first, last and always


청명의 괴

이십

 

 

 

 

 

청명의 괴

 

 

/ 허수아비에게 심장을 건넨 이는 누구인가.

 

엿새 째 이어지는 장마. 통풍도 되지 않는 성채에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건물 사이로 늘어진 빨랫줄에 채 걷지 못한 옷들이 빗물을 머금어 시체처럼 늘어졌다. 좁은 골목에 주인 모를 플라스틱 병이 나뒹굴었다. 하늘을 향해 입 벌린 병의 아가미로 빗물이 떨어진다. 구만옥의 주인장이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내놓은 병을 수거하기 위해 나섰다. 철제 계단이 류의 걸음마다 진동했다. 찰박거리는 소리 사이로 녹슨 계단의 소음이 류의 예민한 귀를 괴롭혔다. 젠장. 이래서 염병할 장마가 오기 전에 여길 떠야 하는데. 류의 외침이 빗소리에 먹혀들었다.

 

성채의 바닥에 두 발을 디딘 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제 몫의 병을 찾으려 애썼다. 유독 비가 적게 오더라니. 빗물이 페트병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찰랑였다. 만두 세 판쯤은 거뜬히 만들겠어. 류가 만족스럽게 중얼댔다. 페트병 네 개를 번쩍 든 류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삐걱대는 쇳소리가 성채 골목을 울린다. 인심 좋은 구만옥의 주인장 류. 간판의 전등이 나갈 때가 되었는지 힘없이 불빛을 깜박였다.

 

청명. 날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자주 찾아오면 곤란해.”

설마 좋아할 게 없어서 당신을 좋아할까.”

 

가게의 문을 엶과 동시에 익숙한 남자가 가게로 들어와 앉았다. 구만옥의 유일한 단골. 류는 농담을 던지며 익숙하게 남자를 맞는다. 찜기에서 만두 여섯 개를 쪄내 남자에게 건넸다. 빗소리가 멎어들고 있었다.

 

곧 장마도 끝인가 봐. 청명, 네가 맞았어.”

내 무릎 정확하다니까. 물 잔뜩 받아뒀지?”

덕분에.”

 

그 무릎, 다시 수술할 방법은 없는 거야? 류가 청명에게 물었다. 청명이 고개 저으며 묵묵히 만두를 씹어댔다. 크게 불편한 것도 없고. 칼 들이밀면 고래 죽이는 꼴이 될까 봐 좀 그래. 청명이 대답했다. 그의 무릎에 숨쉬는 검은 고래. 상처 위로 덧댄 생명. 고래의 등줄기를 따라 길게 늘어진 칼의 흔적. 청명은 성채의 하늘에 뿌옇게 구름이 낄 때마다 비의 신호를 예고했다. 구룡채성의 서부에는 밥줄 잃은 의사들이 모여 개미굴 병원을 개원했다. 개중에는 돌팔이가 절반이다. 운 좋게 베트남 출신 수의사의 가호를 받았다. 강아지 다리조차 찢어보지 못한 그가 청명의 다리를 멀쩡히 봉합한 것은 천운이다.

 

제 몫의 만두를 우적우적 씹던 청명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와 짤짤이 동전을 꺼내 류에게 건넸다. 만두피 빚던 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돈이 좀 생긴 거야? 류의 물음에 청명이 고개 끄덕였다. 예전 외상값도 쳐서 주는 거야. 당신 떼어먹은 거 미안해서. 류가 신난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종이 봉투에 만두를 담았다. 김 서려 눅눅해진 봉투를 청명의 품에 내던졌다.

 

작업도 먹어가며 해야지.”

서비스 좋네.”

 

청명이 고맙다며 제 품에 들린 봉투를 흔들었다. 끼익. 구만옥의 낡은 철제 미닫이문이 열렸다. 대체 무슨 멋을 저렇게 부렸는지. 청명은 남자의 옷차림을 보며 혀 찼다. 남자는 청명과 류를 한참 번갈아 쳐다보더니 청명의 무릎에 새겨진 고래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네가 청명이지?”

…….”

이카사마 키에루.”

?”

 

청명이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였다. 요나고시의 꼬리표는 다 떼어냈다 생각했는데. 어째서 허수아비의 생명은 이리도 끈질긴가. 남자는 자연스레 구만옥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눈치보던 류가 만두를 드시겠냐며 물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키에루, 앉지 그래. 다시금 불린 요나고시의 추억에 청명이 입술을 짓이겼다.

 

나를 어떻게 알지?”

…….”

어떻게 내 이름을 아냐고 물었어.”

 

반가워. 주헌이야. 남자는 청명의 말에 대답도 않고 곧은 손을 내민다. 손이 좀 민망한데 악수부터 해주지 그래. 남자가 덧붙였지만 청명은 두 손을 주머니에 쑤셔박았다. 남들보다 유독 짧은 엄지손가락을 주머니 속에서 매만졌다.

 

수왕을 찾고 있다지?”

 

여기선 다들 그렇게 불러. 현우의 다른 이름이지. 난 수왕 밑에서 일을 해. 주로 너처럼 수왕의 뒤를 쫓는 벌레들을 처리하지. 수왕은 이미 너의 존재를 알아. 미리 경고하는데, 현우에게 까불지 않는 편이 좋을걸. 청명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이다. 현우의 사람이지만 선 넘게 나불대는 꼴은 질색이었다. 숨 죽이고 만두 빚던 류가 청명의 눈치를 본다. 무서우니 나가서 이야기하라는 눈빛이다. 청명이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두드렸다.

 

다른 곳에서 얘기하지. 여기 주인장이 한국어를 알아들어.”

 

청명의 말에 주헌이 고개 들어 류를 노려본다. 덩치 큰 주인장이 몸을 한껏 웅크려 굳은살 밴 손으로 만두를 빚어낸다. 먼저 엉덩이를 뗀 건 청명이었다. 낡은 미닫이문이 다시 열린다. 멎어가는 빗소리가 구만옥을 감돌았다. 주헌이 그의 걸음을 따랐다. 미로처럼 복잡한 성채의 골목. 건물을 높이 쌓아댄 탓에 아랫집엔 볕이 들지 않아 가지각색의 전구가 즐비했다. 늘어진 전선이 정리되지 않은 채 건물 사이로 얹어졌다. 성채의 동부 지하에는 구룡에서 가장 큰 마작판이 있다. 청명이 낡은 목재 문을 쿵쿵 두드리자 촌스러운 초록색 원피스 차림의 정 마담이 청명을 맞는다. 새빨간 마작판의 조명. 정 마담의 벨벳 원피스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정 마담은 청명과 주헌을 마작판 구석의 룸으로 안내했다.

 

여전히 마작을 치나?”

 

주헌이 물었다. 청명은 대꾸 않고 허리춤에 숨겨둔 총을 꺼내든다. 주헌의 짧은 머리카락에 총구가 스쳤다. 내가 먼저 물었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건조하게 갈라지는 청명의 목소리. 주헌은 넉살 좋게 웃어대며 양손을 머리 위로 든다. 진정해. 진정해. 네가 청명인지, 이카사마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수왕의 시중을 드는 들개일 뿐이라고. 살의 없는 말들에 청명이 총을 거둔다.

 

현우에게 나를 데려다줘.”

수왕은 여기 없어.”

 

성채는 집 잃은 사람에게 새로운 터전이 되곤 하지.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자들은 굳이 엉덩이 붙이지 않아. 주헌이 덧붙였다. 성채는 청명을 품었다. 출생의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사생아. 누가 그에게 이름을 붙였나. 불릴 이름이 생겼으니 불러주는 자를 주인으로 섬겼다. 이카사마 키에루. 요나고시의 빠칭코에서 잎담배를 팔던 맥주 머리 소년이 열여섯 무렵 가진 이름. 가만히 총을 매만지던 청명에게 주헌이 입을 뗐다.

 

손가락은 일본에서 잃었나?”

…….”

일본에서 당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청명이 허전한 엄지손가락 끝을 주머니 속으로 숨겼다. 현우가 여기 없다니, 무슨 얘기야. 말의 방향을 돌렸다. 주헌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했다. 내가 수왕의 잡일을 도맡듯이 수왕 역시 삼합회의 잡일을 맡지. 현우라고 부르지 않는 게 좋아. 주인 이름 부르는 개새끼 본 적 있어? 수왕의 이름을 부르는 유일한 사람은……. 주헌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정 마담이 룸의 문을 열고 들어온 탓이다. 장마에 눅눅해진 머리카락이 생기를 잃고 어깨를 따라 축 늘어졌다. 투박하게 깎아낸 과일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눈치보던 정 마담이 청명의 옆으로 풀썩 앉았다. 소파 위로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난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까 편하게 얘기해. 그녀의 유창한 중국어와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룸을 채운다. 정 마담을 못 미덥게 바라보는 주헌의 시선 사이로 청명이 입을 연다.

 

이곳은 손현우의 치하라고 들었어.”

맞는 말이지. 무법지에도 대장은 필요하니까.”

손현우가 날 어떻게 알지?”

 

네가 수왕의 뒤를 밟고 있다는 건 아직 나만 아니까 걱정하지 마. 수왕에겐 평생 비밀로 할게. 수왕은 청명이 아니라 요나고시의 이카사마를 찾아. 일본에서 히로뽕을 유통했다면서? 중국이 그 물건을 찾는 모양이야. 새로운 거래처가 필요하지. 널 찾으러 일본 갈 생각에 들떴는데, 아쉽게 됐어. 홍콩편 비행기가 마지막 흔적이라 설마 싶었는데 같은 성채 사람일 줄이야.

 

일본에선 너에게 총만 쥐어줬나?”

그건 왜 묻지?”

수왕은 검 쥐는 법을 가르치거든.”

 

청명은 허리춤에 꽂아넣은 권총의 방아쇠를 손끝으로 굴려댔다. 일본도를 손에 쥔 야쿠자 파수꾼 사이에서 유일한 총잡이었던 요나고시의 이카사마. 검을 쥔 모습은 영 상상하기 어려웠다. 달빛을 받아 형형히 빛나는 칼날. 검을 떠올리니 고래에 덮인 무릎이 얼얼하게 아려왔다. 과연 검을 쥘 수 있을까. 조각난 손가락과 찢긴 무릎의 과거를 끌어안고서도.

 

관찰력 좋은 주헌이 달달 떨리는 청명의 다리를 툭 쳤다. 수왕 볼 생각에 긴장해? 왜 다리를 떨어. 관찰력은 좋았지만 통찰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내려간 주헌의 시선이 고래에 꽂힌다.

 

온몸에 요나고시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군.”

무슨 소리야.”

잘린 손가락에 무릎 상처까지. 다 일본에서 달고 온 흔적이잖아.”

 

정 마담이 눈치로 대화의 흐름을 읽어내려 애썼다. 달그락대며 커피잔을 내려두는 소리가 이따금 청명과 주헌의 침묵 사이로 갈라졌다.

 

폐전구역은 온통 손현우 치하였다. 삼합회 말단 조무래기들의 서식지. 벌레와 들개를 관리하는 동물의 왕. 저마다 종이 되기를 자처해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에게 할당된 권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 역시 누군가에게 무릎 꿇을까. 머리를 숙일까. 저명한 양육강식의 구조를 알면서도 성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종의 삶이 주의 삶보다 편하다는 것을 은연 중에 깨달았기 때문일까.

 

청명이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무릎의 상처를 매만졌다. 요나고시의 밤을 생각하면 꼭 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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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왕의 귀국. 종들은 저마다 주인 섬길 준비에 한창이다. 청명 역시 새 주인을 섬기기 위해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섰다. 지난 밤 정 마담이 정성들여 다린 네이비 셔츠. 마담의 짙은 향수 냄새가 옷깃을 타고 코를 찔러댔다.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인 깨진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정리하는데 누군가 노크한다. 준비됐으면 어서 나와. 수왕은 밍기적대는 거 딱 질색하거든. 들뜬 주헌의 목소리다. 잠근 문고리를 열어주자 주헌이 문틈으로 고개를 쭈욱 내민다.

 

미안한데 소개팅 아니고 미팅이야.”

참견도 가지가지다.”

차려입은 건 처음 봐서. 좀 생겼네.”

 

주헌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꾸한다. 장마의 끝. 눅눅했던 골목이 쨍한 햇빛을 머금고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구만옥 근처의 인력사무소는 늘 붐볐다. 밥벌이를 소개해주는 브로커가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그 브로커 역시 수왕의 개였다. 청명은 수왕의 손에 들린 목줄이 몇 개일지 가늠했다. 수왕의 사무실은 인력사무소 옆 골목에 위치했다. 답지 않게 고급진 옻나무 대문에 붉은 글씨로 휘갈긴 간판. 무주정육無主精肉. 근래 새로 달았는지 빛바램 없이 깨끗한 모양새다.

 

주헌이 무주정육의 문을 열었다. 낮은 조도의 빨간 조명이 제법 정육점 행세를 한다. 청명은 꿀리는 기색 없이 터벅터벅 구두 발자국 남겨대며 주헌의 뒤를 따른다. 계단으로 두 층을 올라가니 정장 차림의 남성이 청명의 몸을 훑는다. 지분대는 손길에 퍽 기분이 더러워진 청명이 제 손으로 허리춤의 총을 꺼내 내밀었다. 주헌이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린다.

 

청명은 이 순간을 영원히 곱씹는다. 새 주인이 제게 내민 손과, 오직 현우만이 내뿜을 수 있는 향기 같은 것들. 어쩌면 영영 벗어날 수 없는 미로에서 맞잡는 온기.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

야쿠자 오야붕 노릇을 포기하고 홍콩으로 건너온 이유에 대해서.”

 

 

 

/ 유년시절의 불행과 괴물을 삼킨 아이.

 

싸구려 싸이키 조명이 반짝이던 요나고시의 빠칭코. 지하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은은히 돌던 히로뽕의 냄새. 이카사마 키에루. 이름이 불릴 때면 개가 되곤 했다.

 

출생지에 연민을 품었다. 지독하게 외로운 도시. 혈연이 없는 땅은 으레 그렇다. 걸음마를 뗄 무렵 보호자를 잃었다. 어머니는 유일한 지인인 실장에게 아이를 맡기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가게의 유일한 남아였다. 종종 앳된 얼굴의 여자 아이들이 새로운 선수라며 번호를 붙여 일을 시작했다. 소년은 어리다는 이유로 할당된 일이 없었다. 주로 선수들이 나간 방을 정리하거나 가게 앞의 담배꽁초를 주워다 버리는 잡일을 해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을까 불안해졌다.

 

열여섯 되던 해에 한 남자가 가게를 찾았다. 선수에게 떵떵때며 찡 떼어먹던 실장이 남자에게 굽신거렸다. 요나고시 일대의 룸을 관리하는 큰손이라고 했다. 쩌렁쩌렁 실장을 구박하던 남자가 선수 대기실을 치우던 소년에게 시선을 멈춘다. 실장에게 남아의 이름을 물었으나 소년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남자가 소년을 부른다. 아이의 어미는? 선수였는데 아이만 남겨두고 도망갔습니다. 어미를 닮은 이름을 지어줘야겠군.

 

걸레를 쥔 소년이 남자의 앞에 선다. 눈칫밥 먹어가며 자란 소년의 구겨진 마음. 소년은 본능적으로 제 주인을 알아챈다.

 

きみのめいはいかさまきえる

 

이카사마 키에루. 소년은 포식자가 아님에도 사냥감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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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고시의 빠칭코는 새벽에 가장 붐볐다. 슬롯머신이 즐비했으나 가게의 구석엔 마작이 성행했다. 남자는 이카사마에게 드문드문 마작을 가르쳤다. 이카사마를 데려온 남자의 이름은 마쓰리. 이름 따라 사는 삶을 신조로 내세우기 일쑤다. 마쓰리는 요나고시 일대의 오야붕이었으나 호칭이 유치하다는 이유로 대장 노릇을 피했다. 칼을 들고 사람을 썰었지만 정이 넘쳤다. 웃는 얼굴로 실장을 반쯤 죽여뒀지만 다정하게 굴었다. 피에 쩌든 냄새가 났지만 늘 깔끔한 셔츠를 입었다.

 

마쓰리는 이카사마의 모든 것. 연고 하나 없는 땅에서 꾸역꾸역 살아낸 능력이 사라질 리 없었다. 마쓰리의 행동거지를 흡수했다. 그의 사소한 습관마저도.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와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면 찡그리는 눈썹. 거짓말을 일삼을 땐 늘 여유로운 척 다리를 떨어대며 손가락을 매만졌었지. 눈칫밥 먹고 자란 강아지가 말 잘 듣기 마련이라며 마쓰리의 예쁨을 받곤 했다. 중년 남자의 투박한 손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늘한 바람 냄새 사이로 비릿한 향이 감돌았다.

 

빠칭코의 사람들은 죄다 죽은 얼굴이다. 돈을 딸 때면 환희에 젖어 해맑게 웃었으나 푸른 조명 아래 그들은 시체 빛깔이었다. 시퍼런 조명 밑에서 죽을 퍼먹을 때면 식욕이 바닥을 찍었다. 마쓰리의 명령 아래 마작판을 관리했다. 어린 소년이 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요나고시의 성인은 아이를 비웃기 바빴다. 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노름꾼들은 으레 이런 태도다. 이름 따라 살자는 마쓰리의 신조. 이카사마는 가히 이름값하는 충견임이 틀림없다. 유독 고립패를 완성하는 것에 능했다. 마쓰리는 종종 작업을 마치고 이카사마의 맞은편에 앉아 마작을 들었다. 채 지워내지 못한 비린 냄새가 소년의 코끝을 맴돌았다.

 

소년의 수는 마쓰리에게 쉽게 간파당했다. 그에게 배운 것이니 패를 읽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마쓰리가 손장난을 치는지, 눈속임 없이도 소년을 이기는 것인지. 이카사마는 마쓰리의 속을 읽어낼 재주가 없었다. 늘 그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마쓰리가 소년에게 물었다. 작업에 널 데려가려고 해. 갈 수 있겠니? 소년은 작업이 무엇인지 그가 달고 오는 비릿한 냄새로 어렴풋이 알 뿐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만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카사마는 제 손보다 두 마디쯤 큰 권총을 쥐었다. 마쓰리가 소년에게 일렀다. 우리 중 유일한 총잡이는 너란다. 총을 쥐기 시작할 무렵 약에 취한 마쓰리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이카사마만이 알게 된 마쓰리의 비밀. 그는 히로뽕 유통업을 소년에게 쥐어주는 대가로 이카사마의 입을 막았다. 총질을 배우고 마약 유통에도 손을 뻗으니 요고나시의 모든 일들이 제 치하로 여겨졌다. 이카사마는 야망이 있기에 개로 살기를 자처했다. 뒤틀린 아가미는 온전한 호흡법을 알지 못했으나 남에게 기생하며 숨쉴 줄 알면 그만이었다.

 

가볍게 맹세를 약속했다. 다리 떨며 손가락을 매만졌지만 멍청한 주인은 제 버릇을 모르기에 달콤한 아첨을 곁에 삼았다.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는 빠칭코의 푸른 조명을 받으며 버려졌던 과거를 회상했다. 젖병 빨던 손가락이 마작패를 굴린다. 선수 대기실을 어기적대던 발걸음이 매끈한 구두를 신고 절뚝거린다. 이름 없던 아이는 새로 태어난다. 이카사마 키에루. 개로 태어나 개로 죽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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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자랄수록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다. 며칠 전 말단 실장 하나가 손가락을 자르고 도망쳤다. 검을 쥐던 사람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내는 일. 평생 검을 쥘 수 없도록 짓이겨두는 마침표. 결재 도장 받듯 잘려나간 손가락을 확인한 사람만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카사마 역시 제 몫의 손가락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청명의 기대는 절망이 된다. 영특한 개는 견제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모두가 쉬쉬했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돌았다. 늦깎이 야쿠자 이카사마가 어떻게 마쓰리의 왼팔이 되었는지. 소문은 입을 타고 빠르게 와전되기 시작했다. 일간에서 이카사마가 오야붕의 대가리를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며 수군댔다. 물론 마쓰리는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아직 그에게는 마쓰리의 속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었다.

 

절대적 포식자. 마쓰리는 먹이사슬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법 없었다. 그의 낭만은 푸른 조명을 머금고 죽어갔지만, 죄의식에 덮인 권력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그에게 기생하는 벌레가 하루를 멀다하고 늘어갔다. 이카사마는 그중에서도 그의 골수에 뿌리내린 벌레였다.

 

히로뽕에 취해 색을 탐하는 마쓰리. 문득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간의 장기를 썰어 취하는 것이 겨우 번지르르한 양복과 기생충이라니. 마쓰리는 절대악의 위치에서 선의 이미지를 고수했다. 위선 가득한 악행. 그의 밑에서 모든 것을 배웠으니 이카사마 역시 절대악의 후손이다. 뿌리를 잘라내고 싶었다. 마쓰리의 골수 깊숙이 자리잡은 근원의 뿌리를.

 

얼음 담긴 마쓰리의 언더락이 양주로 가득 채워졌다. 약 때문인지 느슨히 풀린 눈빛이다. 이카사마가 입을 뗀다. 홍콩으로 건너가고 싶습니다. 허락을 구하려고요.

 

도망간다는 말을 이렇게 당당히 하는 개새끼는 처음이라.”

…….”

이름 따라 산다는 신조를 이렇게 지키나?”

 

호탕한 웃음소리가 룸을 울린다. 키에루. 그래, 이카사마 키에루. 이름 없는 너에게 이름을 선물했지. 영특한 개는 주인을 알아볼 줄 안다더니. 버려지기 전에 먼저 떠날 줄도 아는군. 과연 명현한 강아지야.

 

떠나면 그 이름부터 버려.”

 

개새끼로 살던 버릇이 있으니 새 주인을 찾겠지. 너를 다시 볼 기회가 올까. 다른 목줄을 달고 있는 건 영 어색하겠어.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겠군. 어떤 명분이 좋을까. 마지막으로 체면 좀 살려줄 수 있겠나?

 

떠날 수만 있다면 뭐든요.”

키에루. 손을 줘.”

 

이카사마는 요나고시의 밤을 기억한다. 잘려나간 엄지손가락과 더 이상 쥘 수 없는 총. 마쓰리의 언더락으로 쏟아진 검붉은 피와 살점. 찢겨나간 무릎. 피 묻은 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슬프게 웃는 마쓰리. 그리고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지.

 

필요없는 개가 떠나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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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가면 손현우를 찾아. 너의 주인이 되어줄 거야.

 

 

 

/ 탈출불가괴패미로

 

이따금 성채의 그늘 위로 비행기가 날곤 했다. 투신한 사람만 한 무더기라는 소문이 흉흉한 옥상은 별 세기 좋은 명당임이 틀림없다. 요나고시를 등진 이카사마가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낭만. 청명의 창세기. 새 주인은 요나고시 일대기를 안주 삼아 고량주 들이키는 것에 흥미를 잃었는지 닷새 째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낡은 옥상 문을 열고 청명을 찾은 목소리는 다름아닌 주헌이었다.

 

청명. 수왕이 널 찾아.”

무슨 일로?”

개 훈련 때문이지.”

 

검 쥐는 법을 가르친다더니. 안주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청명은 허전한 엄지손가락을 까딱였다. 먼지 쌓인 무주정육의 지하에 화려한 패턴의 셔츠를 걸친 현우가 다리를 꼬고 앉아 청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으나 제 차림 또한 다를 것이 없어 굳이 내뱉지 않았다. 상호명 따라 조명을 달았는지 지하마저 붉은 빛이 먼지를 비췄다. 현우가 청명에게 짧은 칼을 건넨다. 서툴게 칼을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던 청명이 현우에게 묻는다.

 

이곳은 왜 붉은 조명을 씁니까?”

죽은 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지.”

 

제가 죽어있다고 생각하세요? 청명의 물음에 현우가 웃음을 흘린다. 개는 여전히 주인의 생각을 읽어낼 재주가 없었다.

 

검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 너에게 맡길 일이 있어.”

어떤?”

일본에 다녀와줬으면 해.”

 

벌써 버리려는 건 아니죠? 청명의 말에 현우가 호탕하게 웃는다. 버리다니. 네가 필요하다고 했을 텐데. 현우가 청명의 오른손에 들린 칼을 빼낸다. 영문 모르는 얼굴의 청명에게 다시 칼을 쥐여준다. 곧은 다섯 손가락이 붙은 왼손. 청명은 새 주인의 손을 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을 사용하게 만든 장본인. 오른손으로 총을 쥐던 과거는 붉은 조명 아래 재가 된다.

 

길들인다는 것. 청명은 길들임 앞에 한없이 나약해졌다.

 

수왕은 무게 잡지 않았으나 가볍게 구는 법 없었다. 곁에 두는 사람은 많았지만 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보이지 않는 명확한 계급이 존재함에도 아랫사람 깔보지 않았다. 늘 날아가기 직전의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비린내나 썩은 장기 냄새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넥타이 없이 단추 두 개 풀어헤친 옷차림. 최소한의 격식 차린 단정함. 과한 점을 꼽자면 헤픈 웃음 정도. 늘 웃어 넘기는 버릇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길들이는 시간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려니 온종일 왼팔이 뻐근했다. 종종 힘이 풀려 손에 쥔 칼을 놓치기 일쑤였다. 바닥에 떨어진 칼을 줍는 현우의 뒷모습.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따뜻한 손으로 칼을 쥐여주던 행동들이. 거칠고 투박하게 자란 개에게는 나름의 위로가 되곤 했다.

 

주헌 역시 청명의 감상에 동의했다. 수왕이 자리를 비운 날이면 주헌이 개 훈련을 대신했는데, 둘은 주로 정 마담을 찾았다. 훈련 내빼고 잡담을 일삼는 게 주헌의 재주라면 재주였다. 정 마담은 여전히 싸구려 벨벳 원피스를 걸친 채 청명을 맞았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청명은 긴 손가락으로 마작패 굴리며 주헌의 말에 맞장구 쳐댔다. . 작은 테이블 밑으로 패가 떨어졌다. 여전이 왼팔이 뻐근한 탓일까. 청명은 찌뿌둥한 얼굴로 어깨를 주무른다. 주헌의 만담에 웃음으로 화답하던 정 마담이 허리를 숙여 패를 주워든다. 그리고 얽혀드는 손. 짙은 붉은빛의 손톱과 화려한 반지로 치장된 마담의 손가락. 청명은 티내지 않고 얽힌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긴다.

 

버석하게 말라버린 탈색모. 허전한 엄지손가락. 찢어진 무릎과 숨쉬는 고래. 요나고시의 개는 성채 위로 나는 비행기를 떠올렸다. 끊어버린 목줄이 남아있는 곳으로 내딛는 걸음. 이카사마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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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옥에서 만두 씹는 청명을 찾은 것은 길쭉한 남자였다. 번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를 경계하는 듯 한껏 위축된 덩치의 류가 또 무슨 일이냐며 눈짓으로 청명을 종용했다. 청명의 맞은편 의자를 빼고 앉은 남자가 대뜸 비행기 티켓을 내민다. 정 마담의 룸에서 주헌이 건넨 이야기를 상기한다. 성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티켓은 형원이 관리해. 수왕의 개들은 그 티켓을 받아 일을 처리하지.

 

형원?”

벌써 내 이름까지 알아?”

주헌에게 들었어.”

 

걘 정말 입이 가벼운 건지, 소식이 빠르다고 해야 하는지. 형원이 혀를 차며 고개 젓는다. 티켓 관리인이야. 강아지 발자국 하나하나 검열하는 게 주인의 일이라서. 이제 개인적으로 성채 밖을 나갈 수는 없어. 형원의 덤덤한 말에 청명이 피식 웃는다.

 

원래 강아지를 가둬놓고 키우나.”

탈출한 경험이 있다면서? 답답하면 여기서도 그렇게 해보지 그래.”

그 얘기는 어떻게 알지?”

나도 주헌에게 들었어.”

 

의자 끄는 소리가 울린다. 잠시만. 청명이 형원을 붙잡는다. 나중에 일본행 티켓을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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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부패한 시체마저 뒤져댔던 옛 주인과는 달랐다. 늘 두 박자 느리게 구는 태도. 가끔은 답답할 만큼 둥글고 순진한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성정 같은 것들이. 구태여 수식어 동반하지 않아도 왕의 자리를 만들었다. 투박한 손에 길들여지고 싶었다. 쉽게 소신 굽히지 않는 청명이 순순히 목 내민 사람. 성채의 벌레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저마다 목줄을 차고 있을 터였다.

 

요나고시 일대기를 안주 삼아 밤새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과. 해가 뜨는지 지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붉은 조명에 잠시 눈을 감을 때면 따뜻한 온기로 얼굴을 감싸던 손길. 옅게 남은 묵직한 향수 냄새와 알코올. 수왕과 마주앉아 잡다한 낱말을 뱉어대면 꼭 이곳이 미로가 아닌 것 같아졌다. 취기 올라 중얼거리는 목소리. 요나고시가 그립지 않니. 그렇게 물어보는 현우에게 고개를 저어보였지.

 

죽지 못한 고깃덩어리들이 늘어진 무주정육. 그리고 무주의 주인장. 주인이 쥐고 있는 수십 개의 개목줄과 이름표.

 

개중에서도 가장 고급진 목줄을 차기 위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난 청명이 입을 연다.

 

다녀올게요.”

…….”

무사히 다녀오면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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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하는 충견이 얼굴을 드러낸 것은 스무하루가 지난 날의 아침. 깨진 거울 마주보고 넥타이 조이는 현우의 뒤로 쾅 소리내며 문이 젖힌다.

 

강아지 왔는데 얼굴이라도 봐주지 그래요.”

기특해서. 어떻게 칭찬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현우의 발치로 검은 가죽 가방이 툭 얹어진다. 넥타이 매만지던 투박한 손이 청명의 머리를 토닥였다. 이렇게 칭찬하면 되나. 영 어색한 손놀림에 청명이 고개 젓는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현우의 넥타이를 쥔다. 중심 잃은 현우가 휘청이다 청명의 어깨를 잡고 선다. 맞닿는 입술. 청명에게서 지우지 못한 요나고시의 향이 풍겼다.

 

이렇게요.”

까불지 말고.”

 

생각보다 건조한 반응에 흥미 잃었는지 청명이 주제를 돌렸다. 요나고시는 여전해요. 어떻게 된 일인지 마쓰리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만 빼면요. 마주치면 손가락 하나 더 상납할 각오는 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지 멀쩡히 돌아왔네요. 혹시 당신이 마쓰리를 이미 손봤을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도 하고요. 청명이 큭큭대며 헛웃음 흘린다.

 

마쓰리의 죽음을 걱정해?”

…….”

네가?”

 

요나고시의 개로 살던 버릇은 잊어. 넌 나의 사람이잖아.

 

버석하게 말라붙은 수왕의 목소리. 청명은 울긋불긋 생채기 가득한 손으로 다시 넥타이를 쥔다. 현우가 저항없이 순순히 이끌린다. 당신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니까 까불어도 봐줄 수 있죠.”

 

목적없는 맹세를 동반한 사랑은 결국 죄가 된다. 끝이 존재하는 미로. 누군가는 길을 찾다 지쳐 벽을 허물기도 했겠지. 손현우 치하의 무법지를 탈출하는 하나의 방법. 미로의 중심에 묶인 개는 붉은 조명을 끌어안고 천천히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