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귀신이 산다. 근데 중요한 것은 그 존재..가 자신이 귀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괴담회에서 나오는 귀신들처럼 위협을 주진 않는다. 무섭게 뒤집어까지도 않고. 다만 문제는.. 귀신과 사는 것이 너무나 편해져버렸다. 그렇다, 손현우는 지금 귀신과 동거를 하는 중이다.
“ 형 오늘 저녁에 떡볶이 먹장. ”
“ ..김말이도? ”
“ 수락~~ 요즘 애들 말투가 이래. 유투브에서 봄. ”
.. 유튜브 지워야겠다.
이 둘의 첫만남은 손현우가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우선 귀신이 나오는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월세가 싸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직장과 가깝고 편의점이 3분 거리 안에 있는 집 월세가 이 가격이라면 홀린 듯 계약해야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주인 아주머니가 이 집이 싼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으셨다. 이유가 궁금하긴 하였지만 너무나 완벽한 집과 월세 가격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약을 끝마친 상태였다. 어쩌겠는가. 싼 이유가 뭐건 견뎌야지 다짐하며 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사를 다 끝마치고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이 생긴 뒤 본가에서 나와 독립을 시작하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일이 끝나면 텅 빈 집에 들어 와 차가운 이불 위로 풀썩 누웠다. 씻기도 귀찮은 늦은 저녁이었지만 겨우 몸을 일으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반 쯤 감긴 눈으로 양치를 끝내고 침대로 다시 돌아 왔다. 핸드폰을 잠시 켜보니 연락이 오는 곳은 업무, 은행 문자 등 신경 쓰면 피곤해지는 것들만 쌓여 있었다. 그냥 핸드폰 화면을 끈 채로 잠에 들려 하자 전화벨이 울렸다. 막 감기려 하는 눈을 겨우 뜨고 계속하여 울려대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화면 속에 떠 있는 이름은 어머니였다.
“ 네, 엄마. ”
“ 오늘은 어땠니? ”
“ 그냥 똑같았어요. ”
“ 약은? ”
“ 먹었어요. ”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신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등등 어머니에게 사소한 것까지 다 말한다. 남들이 보기엔 다 큰 자식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어머니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 일종의 치료라 어쩔 수 없다. 손현우는 현재 해리성 기억 장애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과 같이 살았을 때 아침에 멀쩡히 방에서 나오던 중 갑자기 쓰러 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시끄러웠고 의사가 현우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이 드냐는 질문을 여러 번 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 묻자 부모님은 눈 시울을 붉히며 3일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식물인간처럼 말이다.
부모님은 현우를 붙잡으며 몸은 괜찮냐 물어 오면서 네가 방에서 일주일 동안 나오지도 않았으며 밥도 안 먹었다 말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내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기억이 아예 없으니까.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지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머리가 지끈 거렸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머리를 만지려 하자 손가락 어딘가가 살짝 불편하였다. 손을 펴보니 웬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도 왼쪽 4번째에 말이다. 현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근데, 저 반지가 왜 껴 있어요? "
현우가 일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친구들과 부모님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어머니는 다급하게 의사를 부르며 급하게 병실을 빠져나갔다. 의사와 얘기를 끝낸 어머니는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 와 아무런 말 없이 현우의 손을 잡아주셨다.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 시더니 현우에게 기억 장애가 생긴 거 같다 말하셨다. 뇌가 어떠한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그 기억을 지웠다고 하였다. 대체 그 기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께 그 사건과 관련된 것을 물어보아도 다른 이야기를 꺼내시며 이야기를 돌렸다. 핸드폰도 어머니가 새로 가져다 주신 핸드폰을 써야만 했다. 원래 핸드폰이 망가졌다면서 새로 주셨다. 핸드폰 안에 전화번호는 그저 어머니랑 아버지가 전부였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도 없었다. 어머니는 모든 걸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하셨다. 현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그저 그 날 이후부터 어머니는 현우가 외출을 하고 들어올 때마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빠짐 없이 말하게 하셨다. 그게 벌써 2년 째 그러고 있지만. 솔직히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도 못 했다. 그걸 예상하고 사는 사람은 딱히 없지 않을까 싶긴 하다. 사람 인생은 알다 가도 모르는 거라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그 사건에 대한 궁금증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손에 껴 있던 반지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끔거렸다. 별 거 아니라 생각하며 버리려 하였지만 답답해오는 마음 때문에 버리진 못 하고 그냥 그대로 책상 구석에 놔뒀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로 그냥 가만히 냅두기 만 하였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늦은 시간에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금요일이여도 약속 하나 없는 인간이라 나갈 일도 없었다. 지루한 인생이다. 눈이 스르르 감기려 하였다. 그냥 이대로 자버릴까. 귀찮음이 점점 머리 끝까지 타고 올라 왔다. 눈이 감기려 하는 순간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씻고 자야지 어쩌고 하는 목소리.. 너무 피곤하여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가. 현우는 모든 게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팔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수납장 첫째 칸을 열었다. 쓸데 없는 잡동사니들 안 쪽에는 의사가 필요 시에만 먹으라 하였던 수면제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꺼내어 빨리 잠에 들고 싶은 마음에 입에 쑤셔 넣으려 하였다.
“ 수면제는 몸에 안 좋은데. ”
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 나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피곤하면 이딴 환청이 계속 들리는 것인지. 한숨을 푹 내쉬며 수면제를 입에 물자 누군가 천장 쪽에서 훅 내려 왔다.
“ 하이! ”
눈이 땡그래지며 순간 숨조차 막혔다. 너무 놀라 입에 물고 있던 수면제를 뒤로 꿀떡 삼켜 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눈만 껌뻑거리면서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 보았다.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근데 왜 천장에서 내려오지? 닌자인가? 말도 안되는 이상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뇌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현우를 보며 싱긋 웃더니 걱정 말라는 말을 하였다.
“ 걱정 마! 나 사람 아니고 귀신이야. 짜란. 요즘 시대엔 사람이 더 무서우니까 귀신이 낫지. 응응.
근데 수면제 먹었어? 그거 몸에 안 좋다니까 ㅠㅠ.. ”
저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는 존재가 하는 말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들어올리가 없지. 떨리는 손을 겨우 부여잡고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들어 경찰서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순간 생각하였다.. 남자는 걱정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바닥 쪽을 가리켰다. 손 끝의 시선을 따라 가니 그 남자는 공중에 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남자가 말하는 귀신이 맞았다. 진짜 귀신이네. 아까 먹은 수면제의 약효과가 확 돌면서 갑자기 눈이 스르르 감겼다. 훅 하고 뒤로 넘어가던 순간 그 귀신은 다급하게 현우의 이름을 불러댔다. 근데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모르겠다.. 집이 싼 게 이거 때문이었구나.. 씨발…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침대에 올바른 자세로 누워 있었다. 현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방에서 나오려 문고리를 잡자 거실에서는 시끄러운 티비 소리가 들려 왔다. 설마.. 아까 그 귀신? 근데 귀신이 티비도 보나..? 현우는 숨을 꾹 참고 몸을 숙인 채로 조심스레 방 문을 열어 밖을 살짝 봐보자 흐릿한 형태가 보였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방 한 구석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집으려고 몸을 살짝 돌리던 순간 현우의 배에서 우렁찬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져 버렸다. 문이 스르르 열렸고 그 귀신은 앞에 서서 활짝 웃으며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 배 많이 고파?? ”
꼬르륵 소리가 너무 커버린 나머지 현우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그 귀신은 나오려던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참는 것이 보이자 현우는 빨개진 귀를 다급하게 양손으로 잡고 귀신을 쳐다 보았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귀신이 현우 앞에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진짜로 공중에 떠 있는 귀신.. 심*괴담회에서 본 것들은 다 거짓말이라 생각했는데 진짜로 있었구나.. 현우가 귀신을 피하려 몸을 살짝 씩 움칫거리자 그 귀신은 무릎을 쭈그리고 앉더니 자기 소개를 하였다.
“ 내 이름은 이민혁이야. 너는? ”
“ 나.. ? 나는 손.. 현우.. ”
“ 반가워! 몇 살? ”
“ 서른.. 한살.. ”
“ 형이네! 형~ 나는 28살 ㅎㅎ. ”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귀신하고 나란히 바닥에 앉아 인사를 나누며 나이가 몇 살인지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저 귀신이 대체 왜 현우의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고 딱히 죄 짓고 산 것도 없는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기 바빴다. 현우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자세를 고쳐 죄인 마냥 무릎을 꿇더니 원하는 게 뭐냐 물었다. 귀신이 이 집에 온 이유는 성불을 해달라는 거겠지..? 제사상을 차려야 하나? 소금을 뿌려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을 굴리고 있던 중 이민혁이라고 하는 귀신은 한 가지 제안을 건네 왔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테니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말도 안된다. 동거라니 그것도 귀신이랑? 쟤는 월세도.. 못 내는데. 별 생각을 다 하며 고민 해봤지만 사실상 별 다른 방법도 없었다. 이사 갈까 해도 돈이 없었다. 젠장. 현우는 두 눈을 꾹 감은 채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와! 앞으로 잘 부탁해, 형! ”
현우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내뱉으며 억지 웃음을 선보이고 속으로 생각했다. 좆됐다.
둘이 이상한 동거가 시작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민혁은 귀신 같지 않았다. 귀신이 귀신 같지 않다니. 말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진짜 귀신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일 뿐 만져지기도 하였다. 저번에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한 순간 이민혁이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겨 잡아주었다. 조심 좀 하라는 잔소리를 붙이며 어디 안 다쳤냐고 물어 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귀신이 맞는지 착각까지 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음식 같은 것도 먹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귀신이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 맛만 사라지고 음식은 안 사라진다 하였는데 이민혁은 그러지 않았다. 정말 사람.. 같았다. 귀신이라는 것을 까먹게 만들 정도로.
이민혁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사람과 상황, 둘 다를 잡을 줄 아는 사ㄹㅏ.. 아니 귀신이었다. 현우가 아침에 일어 나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방에서 나오면 어딘가 구석에 쳐 박아 두었던 앞치마를 두른 채로 식빵을 굽고 있는 민혁의 모습이 집 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출근 준비를 다 끝 마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으면 잘 갔다 오라는 말을 건네주는 동거인이 생기긴 하였다. 생활하는 것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무섭다거나 그런 느낌도 들지 않았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하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민혁은 반갑게 현우를 맞이해주었다. 아. 가끔씩 이상한 점은 있었다. 현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반지를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멍하니 말이다. 민혁의 이름을 부르면 화들짝 놀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에서 나오고는 했다. 이상하긴 하였지만 그때는 반지를 좋아하나 같은 생각만 하였다.
이민혁과 같이 살게 되면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한 가지 생겼다. 저녁 같이 먹기. 현우가 가끔씩 피곤하다고 저녁을 먹지 않겠다 하면 어깨를 축 내리며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고 문 앞에 서 있는 이민혁 때문에 잘 챙겨먹지 않았던 저녁까지 챙겨먹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혁이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 식사는 이민혁 담당이다. 귀신이라 월세는 못 내니 요리라도 하겠다며 자기가 먼저 손발 벗고 나서댔다. 된장찌개를 끓여주겠다며 앞치마까지 두르더니 찌개 안에 설탕을 들이 부으려 하는 장면을 목격해버리고 만 후에 급하게 말렸다. 간단한 요리만 하고 어려운 요리는 하지 말라 말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지 시켰다. 현우까지 귀신이 될 수는 없으니까.
민혁이 차려 준 저녁을 먹고 같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씹던 중 너무 편한 삶을 지내버리는 바람에 잊고 살았던 것이 떠올랐다. 왜 하필 이민혁은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집 중에 왜 하필이면 현우의 집으로 왔는지 궁금해졌다. 두둥. 현우는 먹던 아이스크림 숟가락을 내려 놓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진지하고 심각하게 보이도록.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
“ 엉? ”
“ 왜.. 우리 집으로 온 거야? ”
“ 주인 아줌마랑 친해서! ”
어깨를 으쓱대며 살짝 미소를 짓는 민혁의 표정을 보자니 현우는 비장하게 지었던 표정을 스르륵 풀었다. 왜 인지 모르게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만 끄덕였다. 현우는 피곤하여 자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하였다. 곧 이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민혁은 눈치를 잔뜩 보는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느낌이 왔다. 이상하게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왔다. 뭔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할 수가 없는 느낌이라 해야하나. 강아지가 혼났을 때 귀가 축 쳐진 거 마냥 큰 몸을 움츠리고 있는 민혁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는 정신을 번뜩 차리는 것처럼 고개를 재빠르게 흔들었다. 분명 겨울이지만 더운 느낌에 손부채를 하고 있는 현우의 얼굴을 민혁이 발견하더니 당황하며 어디 아프냐고 호들갑을 떠들었다.
“ 형 어디 아파???? 얼굴이 빨개 ㅠㅠ!!! 지금 겨울인데?? 밖에 나가면 파티장에 있는 얼음 동상 되는 날씨야.. ”
“ 뭐라는 거야.. 조금만 조용히 해 봐.. ”
“ 웅.. 합.”
“ 합은 뭐야. 입은 왜 그렇게 앙 다물었는데. ”
“ 조용히 하라며.. 합죽이가 됩시다 몰라? 아 조용히 맞다.. 합. ”
현우는 입을 앙 다물고 있는 민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아지 같이 생겨가지고 하는 행동도 강아지 같다고 느껴졌다. 현우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자 민혁은 현우에게 달라 붙으며 왜 웃냐며 자기도 알려달라고 입술을 쭉 내밀며 쫑알대는 민혁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는 건 얼핏 가다 생각이 날 만 했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헷갈리게 하는 민혁과 나쁘지 않은 삶을 살던 중 잊고 살았던 현우의 동창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SNS로 온 연락이었다. 어떻게 계정을 찾은 것인지는 몰라도 동창회를 너무 많이 빠졌으니 이번만큼은 나오라는 메세지를 보내줬다. 기억을 잃게 된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지인들과 연락을 끊게 되었다. 핸드폰에 연락처가 없기도 하였고 일방적으로 피한 것도 있긴 했다. 그냥 사람 만나는 것이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인지 모르게 더 이상 피하면 안될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민혁에게 늦게 들어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나간 동창회 자리는 은근 즐거웠다. 현우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같이 놀았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옛 추억도 생각하며 나쁘지는 않았다. 이민혁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무르 익었을 때 즈음 동창 하나가 민혁씨는 잘 지내냐 물어 왔다. 무슨 소리지? 얘가 민혁이를 어떻게 알지? 현우는 이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걔를 어떻게 아느냐 되물었다.
“ 어떻게 몰라, 둘이 결혼 할 사이 아니었어? ”
민혁의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에 있는 동창들이 결혼 생활은 어떠냐며 신혼이지 않냐며 온갖 질문들을 해대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머릿속에 스쳐 가듯이 지나가는 이 장면들은 무엇인지 아무나 붙잡아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 장면 속에서 분명 누군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신호등 맞은 편에서. 웃고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을 했다. 떠올리고 싶었다. 이 장면 속 사람이 누구인지. 손에는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가 잘 어울렸던 사람. 아. 현우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둘러 짐을 챙겼다. 집에 가야만 했다.
“ 미안, 집에 가봐야할 거 같다. ”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왔다. 그 날따라 유독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 보며 택시를 찾고 있는 중 도로 가운데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큰 소리가 거리를 울려 퍼지게 하였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보니 차 앞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헬멧 안에서 검은 피들이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119라도 부르려 핸드폰을 잡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가만히 서 있을 수조차 없는 고통이 순식간에 현우를 뒤덮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깨질 듯한 고통 때문에 머리를 감쌌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이러한 상황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대체 이 고통이 무엇인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현우를 둘러 싸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괜찮냐 물어 오며 다가 오자 떠올랐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알았다. 숨이 탁 풀어지며 고통이 끊겼고 기억은 떠올랐다. 이민혁이 누구인지.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내지 못 한 이유가 떠올라버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 날이 떠올랐다. 이민혁, 이민혁은 그 날 죽었다. 손현우를 구하려다 죽어버렸다, 그것도 허무하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해버리는 순간이 왔다.
그 날, 이민혁은 신호등 맞은 편에 서서 해맑게 웃으며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꽃다발 안에는 민혁이 그려 와 청첩장에 쓰기로 한 종이가 들어 있었다. 현우는 겨우 일을 끝마치고 허겁지겁 나와 마주하였던 민혁의 모습은 꽃다발보다 더 예쁘게 보였다. 신호등을 건너려 하는 순간 민혁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바닥에 던지며 다급하게 현우가 있는 쪽으로 뛰쳐 왔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앞에서 해맑게 웃던 이민혁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꿈인 줄 알았다. 꿈이라 믿고 싶었다. 몸이 떨리며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찬찬히 들어보니 도로를 보니 깨진 유리조각들 처럼 핏방울들이 흝어져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민혁이 눈 안에 들어 왔다. 다리 쪽에 진통이 강하게 왔지만 겨우 움직여 그 쪽으로 천천히 걸어 갔다. 민혁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막을 수도 없이 흘러내렸다. 민혁의 몸을 끌어안은 뒤 이름을 작게 부르며 얼굴을 쓰담았다.
" 민, 민혁아. 정신 차려 봐.. 응? 민혁,.. 민혁아... ”
민혁의 숨이 작게나마 붙어 있던 것을 확인한 현우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상태를 확인하였다. 민혁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숨도 크게 쉬지 말라고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부여잡고 말하면서 겉옷을 벗어 머리 쪽에 흘러 내리는 피를 닦아내었다. 피가 끝 없이 흘러내리자 현우는 나오려 하는 눈물을 꾹 삼키며 구급차 금방 올 거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달라 부탁하였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는 없었다.
“ 민혁,아.. 어떡해... 피가 너무 많이, 하.. 왜, 왜 그랬어.. 왜 그랬어... ”
“ ..... 형. ”
“ 말.. 하지 마, 말하며 안돼. 민혁아, 말하지, 마... ”
“ 형… ”
툭 -, 팔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겨우 숨을 내쉬던 민혁의 소리가 끊어졌다. 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민혁을 불렀다. 대답을 해주길 바라며 몇 번이고 계속하여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민혁을 끌어 안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끌어 안았다.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민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하였다. 그 날은 이민혁과 손현우의 결혼식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곧 이어 구급차들이 오는 소리가 들려 왔고 현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힘 없이 실려가는 민혁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민혁 대신 죽고 싶었다.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달라 빌고 또 빌었다. 응급실에 들어 서자 의사들은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으며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살릴 수 없다고 하였다. 응급실 앞에 서 울고 또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 순간에 잃은 그 마음은 함부로 알 수 없는 고통이었다.
민혁의 장례 준비를 하는 곳에 현우는 갈 수 없었다. 가서 도우려 해도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그저 장례식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 돌아 갔다. 이민혁의 장례식 날은 너무나 빠르게 다가 왔다. 장례식장에 들어가자 맡고 싶지 않은 향 냄새들을 코를 찔러 댔다. 입구에서 들어가지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자 민혁의 어머니가 오시더니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현우를 안아주기만 하였다. 눈물을 애써 참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는 말만 하였다. 차라리 현우에게 욕을 하며 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민혁이 죽은 거라 생각했다.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며 탓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민혁의 어머니는 현우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 주셨다.
“ 현우야,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그런 생각 하지 마. 민혁이.. 그냥 잘 보내주자, 응? ”
“ .. 네, 네. 그럴게요. ”
숨을 꾹 참은 뒤 민혁의 영정사진 앞에 섰다. 영정사진 속의 민혁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현우가 너무나 사랑하던 그 웃음으로. 감정을 꾹 억누른 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민혁의 어머니는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민혁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현우는 그저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고개만 숙인 채로 서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 와 현우는 곧바로 방 안에 들어갔다.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때는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안에 가두고 숨죽이며 울었다. 밥조차 넘어가지 않았다. 부모님께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먹으려 해보아도 한 입 먹은 뒤에 바로 화장실로 뛰쳐 가 모든 걸 다 토해내고 말았다. 얼굴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사람 꼴이라 하기도 힘들었다. 일주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조차 자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며 빌었다. 제발 다시 눈 앞에 민혁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다시 나타나 준 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 말 만큼이라도 전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나타나지 않는 민혁이 미워졌다. 미워해하지 말아야 할 사람인데 미워해버리고 말았다.
날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보다 못 한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 와 울음을 보이셨다.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며 현우의 손을 꽉 잡고 우셨다. 죄송스러웠다. 못난 아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 죄송하다며 자리에서 일어 나 방 밖으로 한 걸음 씩 나섰다. 어머니는 정말 고맙다며 현우를 안았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따뜻한 품 안 속에서 현우는 정신을 잃었다. 너무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서 기절을 해 버린 것이다. 바로 응급실로 향하였지만 3일 동안 눈을 뜨지 않는 현우 때문에 소중한 이를 더 잃을까 봐 부모님은 잠도 주무시지 못 하며 현우의 곁을 지켰다. 3일 만에 겨우 눈을 뜬 현우가 뱉은 첫 마디는 모두가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손현우가 이민혁이라는 존재를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까먹어 버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다급하게 병실을 나가신 것이었다.
그때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 그 사건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떠올랐다. 현우는 주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 나 다급하게 달렸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쉬지도 않으며 달렸다. 숨이 막혀 와 죽을 것 같아도 집을 향해 달려야만 했다. 나타나줬으니까, 이민혁이.
현관문 앞에 도착한 현우는 헉헉 대며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이민혁이 누구인지 알아버린 지금 그 사람을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도망 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빌어도 꿈에 나오지 않던 이민혁이 저 안에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마주해야 했다.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만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에 들어 서자 현우를 반갑게 맞이 해주는 민혁이 서 있었다. 숨을 헉헉 대며 아무런 말도 없이 민혁을 바라보고 있는 현우의 모습에 민혁은 당황스러하는 표정을 지었다.
“ 형? 뭐야? 뛰어 왔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근데 땀이.. 수건이 어디 있지? ”
민혁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수건을 찾아 나서자 현우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민혁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 민혁아. ”
“ 왜? ”
현우는 자신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셔츠 소매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억누를 수 없는 감정들을 속 안으로 삼켰다.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부여잡고 정적만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현우는 전해야만 했던 말을 꺼내었다.
“ .. 미안해. ”
그 뒤로 아무런 대답도 오지 않았고 정적이 흘렀다. 현우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어떠한 말을 더 해야할지 민혁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든 것이 두려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바닥을 향하여 툭툭 떨어지는 눈물들을 붙잡으려 해도 잡아지지 않았다. 현우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민혁은 무릎을 꿇어 아래에서 현우를 올려다 보았다. 그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 형. 고개 들어 봐. ”
“ ..내가, 너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
“ 그런 거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응? ”
민혁은 손을 뻗어 현우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그 손길마저 다정하였다. 고개를 들자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민혁의 얼굴이 보였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민혁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 부탁하였다. 현우는 눈물을 그치고 그제서야 민혁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 .. 뭔데. ”
“ 내 소원은 도망치지 말기. ”
“ .. 고작? ”
“ 응 고작 이거. 그거면 돼. ”
“ 너 바보야? ”
“ 형 한정 바보긴 하지. ”
현우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그 웃음을 하고 서 있는 민혁이 미웠다. 나타나면 모든 것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다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현우는 다시 나올 거 같은 눈물을 꾹 참으며 민혁에게 물었다. 왜 꿈에 나오지 않았냐고. 그렇게 빌었는데 왜 한번이라도 나타나주지 않았냐고 묻자 민혁은 우물쭈물 거리더니 곧 이어 입을 뗐다.
“ 미안해서. ”
“ 네가.. 미안해 할 게 뭐가 있어. ”
“ 나 때문에 형이 힘들어 하는 거 아는데 내가 다시 나타나 봐.
내가 이기적인 거 아는데 형이 너무 아파하는 거 못 보겠어서. 미안해, 형.”
“ 그럼 지금은 왜 나타났는데.. 아예 나타나지 말지 그랬어. ”
힘들어 할까 봐 나타나지 않았다는 민혁의 말에 현우는 순간 울컥하며 화를 냈다. 그 밤마다 얼마나 빌었는지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나와 달라 빌었던 심정은 싹 다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내었다. 억 눌렀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고 눈물은 흘리며 화를 내던 현우를 민혁이 끌어 안았다. 이거 놓으라고 하는 현우의 말에 민혁은 하지 못 했던 말을 전하고 싶어 다시 나타난 거라 답하였다. 밀어내고 싶었지만 민혁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고개를 현우 어깨에 박더니 이내 조금씩 훌쩍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 소리에 현우가 화 내는 것을 멈추자 민혁은 말을 이어 갔다.
“ 형.. ”
“ 왜. ”
“ 사랑한다고. 진짜로. 많이 사랑해. 이 말 꼭 하고 싶었어. 나 좀 이기적이지? 미안해. ”
글썽이던 눈물을 닦으며 웃으려 노력하는 민혁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곧 이어 민혁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앞으로 건넸다. 현우가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자 민혁은 옅은 미소로 답을 보냈다. 민혁이 앞으로 건넨 것은 반지였다. 너무나 익숙한 반지. 현우 책상 앞에서 빤히 쳐다 보았던 그 반지.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었던 그 반지였다. 현우가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그 반지를 손에 꽉 쥐었다. 민혁을 이제서야 떠올린 자신이 미웠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내릴 수 없었다. 민혁은 그런 현우의 손을 잡아주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듯이. 민혁은 쓸데 없이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 그만 울어. 이러면 나 못 가잖아. ”
“ 내가 미안해.. ”
“ 그러면, 약속 꼭 지켜야 돼. ”
“ 꼭.. 지킬게. 맹세할게. ”
“ 사랑해. 다음 생에서 만나, 우리. ”
“ 나도, 나도 사랑해. ”
민혁은 점점 흐려져 갔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잡으려 해도 잡아 지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민혁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였다. 민혁이 다 사라질 때까지. 눈 앞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후에야 현우는 바닥에 주저 앉아 그저 손바닥위에 올려진 반지를 꽉 쥐며 다음 생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민혁의 평온을 빌어 주었다. 이제 이민혁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나가면 앞치마를 두르고 식빵 굽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사라졌다. 찌개에 설탕을 들이부으려고 하며 이게 맛이라 우기는 모습도 사라졌다. 조용히 하겠다며 합죽이 노래를 장난스러운 모습들도 이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도망도 칠 수 없다. 도망치지 않기로 맹세했으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다. 저 하늘에 있는 사람이 속상해 하지 않도록 잘 살아가야 한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며 다음 생에 만날 것을 기약해야 한다. 언젠가는 분명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럴 거라 믿고 있다. 그리운 사람은 마음 한 속에 담아두고 앞으로 날들을 열심히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