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last and always


바닥

커푸

 

 

 

민혁은 낑낑대며 택시 트렁크에서 커다란 스포츠 더플백 하나와 캐리어 두 개를 꺼냈다. 더플백을 어깨에 메고 캐리어 두 개를 한 번에 끌려니 양팔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도와줄 사람도 딱히 없어 민혁은 다리를 질질 끌며 기숙사 입구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엄마 아빠더러 오라고 할 걸. 그들은 민혁의 만류로 지금쯤 근처 예약해둔 숙소에 갔을 것이다. 괜히 센 척 좀 해보려다가 팔 빠지게 생겼다.

 

민혁이 받아온 학생증을 찍고 기숙사로 들어가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레베이터 없는 기숙사 내부가 그를 반겼다. 고개를 들자 체감상으론 지리산이라도 등반하는 듯한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이 보인다. 민혁은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신경질을 냈으나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 많은 짐을 들고 제 방인 3층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 캐리어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릴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민혁은 2층을 채 올라가기도 전에 지쳐 캐리어를 양쪽에 세워둔 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망할……. 무슨 짐은 이렇게 많이 싸들고 왔는지, 제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 다시 들어갈 생각 없이 왔으니 집에 있던 짐은 침대와 책상 빼고 다 들고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다. 민혁은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숨을 고르다가 다시 팔에 힘을 주고 캐리어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인생에 운동이라곤 없이 살았던 탓일까, 손쉽게 힘이 빠져버린 팔에 캐리어는 다음 계단에 완전히 올라가지 못하고 휘떡 넘어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반 층을 다시 올라와야 할 거라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캐리어를 잡기 위해 민혁이 뒷걸음질 쳤지만 안타깝게도 계단엔 그럴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었다. 무게중심이 휘청하며 뒤쪽으로 쏠린다. 결국엔 자신마저 속절없이 반 층 더 내려가게, 아니 떨어지게 될 거라는 강한 예감에 민혁이 눈을 꽉 감았다.

 

 

 

으억!”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캐리어는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민혁의 몸은 뒤로 넘어가다 말고 단단한 무언가에 탁 가로막혔다. 계단 한 가운데에 벽이 있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 기둥처럼 튼튼한 그 사람은 민혁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붙잡고, 머리와 어깨를 자신의 가슴팍에 기대게 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마치 시체를 끌고 내려가는 듯한 자세였다. 떨어지지 않은 건 감사한 일이다마는 민혁은 목이 꺾여서 몹시 불편했다. 민혁은 목이 눌려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나 좀 일으켜 줄래.”

.”

 

 

 

그는 민혁을 가뿐하게 밀어서 똑바로 일으켰다. 목을 문지르며 내려다본 그 애는 개학 전이라 아직 0도 언저리를 배회하는 추운 날씨에도 반팔에 5부 반바지만 떨렁 입은 채였다. 아무리 실내라지만. 민혁은 제가 입고 있던 패딩 점퍼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멀뚱히 서서 민혁을 올려다보는 그는 키와 덩치가 웬만한 성인 못지않게 컸지만 얼굴엔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어서 학생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몇 학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붙임성 빼면 시체인 민혁은 개의치 않고 일단 반말로 곰살맞게 말을 붙였다.

 

 

 

, 너 아니었으면 중졸로 황천 갈 뻔했다. 고마워.”

, …….”

기숙사 살아? 몇 학년?”

. 3. 1학년이야.”

동갑이네! 이름이 뭐야? 나 이민혁.”

손현우…….”

 

 

 

현우는 덩치와 상반되게 나긋나긋한 태도로, 곧 속삭이기라도 할 것처럼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주눅 들어 있는 듯해 보이면서도 왜인지 시선만은 상대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민혁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민혁은 학교에 온 첫날부터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민혁은 쓸쓸하게 나뒹구는 캐리어를 주울 생각도 없이 서서 현우와 떠들었다. 언제 왔고, 어디서 왔고, 몇 호고, 룸메이트는 누구고…….

 

어느새 민혁은 한 계단 내려와 현우와 가까이 선 채, 계단 난간에 기대어 웃고 있었다. 현우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민혁이 하는 양이 재밌는지 무슨 말을 해도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너 몸 짱 좋다. 체육 특기생이야?”

. 수영해.”

수영?”

.”

 

 

 

반팔 아래 드러난, 근육이 붙은 팔뚝을 콕콕 찌르며 가볍게 물어봤던 민혁이 사뭇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숙사까지 있는 예체능 특화 고등학교에 수영부가 있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도리어 현우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

, 아니……. 그냥 신기해서. 난 수영 아예 못하거든. 맥주병이야. 섬에서 살았는데도, 이상하지?”

그럴 수도 있지.”

 

 

 

멋쩍음에 괜히 횡설수설 얘기했건만 현우는 지금까지와 별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여상스레 대답했다. 수영이라, 그런 스포츠가 있었지. 뭐든 깊은 물이라면 질색하는 민혁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깊이 고인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사는데다 온가족이 어업에 종사하는 상황에 수영도 못하느냐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봤다. 어렸을 때는 사촌이나 친구들이 놀려대는 걸 참지 못하고 홧김에 바다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론 죽을 뻔 했고, 다시는 바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계곡이든 수영장이든 조금만 깊어 보이는 물이라면 예외는 없었다. 민혁에게 물은 항상 무서운 것이었다.

 

어쩐지 낮아진 텐션에 어색해진 민혁은 그제서야 처량하게 반 층 밑에 떨어져 있는 캐리어를 챙기러 뛰어 내려갔다. 다시 짐을 잔뜩 짊어지고 한 층을 더 올라갈 생각에 탄식부터 튀어나왔다. “어으으으.” 민혁이 죽는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고작 한 계단 위로 올렸을 때, 불쑥 튀어나온 손이 무라도 뽑는 것처럼 캐리어를 휙 들어올렸다.

 

고개를 들면 현우가 둥글둥글 순한 눈매를 끔뻑이며 넌지시 묻는다.

 

 

 

도와줄까?”

.”

 

 

 

물론 거절은 하지 않았다. 민혁은 운동이라면 질색이었다.

 

 

 

 

 

 

-

 

 

 

 

 

 

우연찮게도 현우와 민혁은 기숙사가 바로 옆방이었다. 아마 가나다순 이름으로 배치된 것 같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단순히 학교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서로였다는 이유만으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 나잇대 애들이 으레 그렇기도 했고, 민혁은 몰라도 현우는 새로운 사람과 다시 친해지는 것보단 조금이나마 익숙한 사람을 대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기숙사에 입소한 학생들은 기상과 점호를 다 함께 하는 탓에 가까워지기 더 쉽기도 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 끼를 같이 먹고 같은 시간에 잠들었으니까. 거기다 원칙상으론 금지지만 학생들이 종종 방을 바꿔서 놀거나 점호 이후에도 너무 시끄럽게만 하지 않으면 떠들고 노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생들이 친해지지 않기란 더욱 힘든 일이었다. 민혁은 때때로, 사실 꽤 자주, 현우의 기숙사 방을 들락거렸다.

 

그래봤자 친구들과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밤새 시시콜콜한 얘깃거리로 떠드는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보통 이야기를 나눌 땐 대체로 민혁이 말하고 현우는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민혁은 즐거웠다. 현우는 무슨 말을 해도 허투루 듣지 않고 반응을 해주었고, 항상 말하고 있는 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민혁은 그것이 특히나 좋았다. 짙은 색이지만 맑은 빛을 띠는 눈동자는 언뜻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꼭 저를 깊이 꿰뚫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다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 그가 바다로 둘러싸인 감옥 같았던 섬에서 빠져나와 가장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기에 특별했던 걸지도 몰랐다. 마치 알을 깨고 나와서 보게 된 첫 번째 사람을 따르는 동물들의 각인 현상처럼.

 

그러나 그것이, 비단 민혁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소녀누]

[오늘 석식 개노맛]

[애들이 나가서 먹자는데]

[같이 가장]

[(이모티콘)]

 

[난 괜찮아]

[갔다 와]

 

[왜애잉]

[치킨 먹자ㅡㅡ]

 

[과제도 남았고]

[나는 급식도 좋아]

 

[그럼 그냥 안 나갈래]

 

[왜 갔다 오라니까]

 

[혀누 없이 어떠케 혼자 가잉]

 

 

 

현우는 애교스러운 말투와 귀여운 이모티콘이 남발했던 메신저 채팅창을 떠올리고 작게 웃었다. 민혁은 퍽 날카로워 보였던 첫인상과 다르게 누구에게든지 곧잘 말을 붙이고 또 친해졌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왜인지 민혁은 저를 썩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우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숫기 없는 사람이었다. 민혁이 10마디를 하면 현우는 겨우 한 마디를 할까 말까였고, 거의 모든 학생들과 친구가 된 것 같은 그와 다르게 현우는 민혁을 제외하면 친하다고 할 만한 친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민혁은 제 기숙사 룸메이트들이나 반 친구들을 뒤로하고 항상 현우와 함께 다니고는 했다. 체육 특기생과 미술 특기생은 건물도 다르지만, 수업이 끝나면 민혁은 항상 잽싸게 2동 건물로 와 현우를 데리고 급식실로 달렸다.

 

운동이라면 죽기보다 싫어하면서, 그럴 때는 누구보다 열심인 제 친구를 생각하면 현우는 웃음이 났다.

 

잠시 뒤 오후 연습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휘슬이 울렸다. 높은 휘슬 소리는 밀폐된 실내 수영장 안에 귀 따갑게 부딪혀댔다. 하지만 현우가 이를 알아챈 건 레일 끝에 손이 닿아 고개를 들고 바로 섰을 때였다. 현우는 금세 텅 비어 미약한 파동만이 남은 수영장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상념에서도 벗어났다.

 

안 그래도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에 체력소모가 큰 운동을 한 아이들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나가버렸다. 현우는 뒤늦게 흐르는 물로 대강 몸을 닦아내고 라커룸에 들어섰다. 오후 연습이 끝난 이후에는 굳이 교복을 입을 필요가 없어 현우는 검은색 반팔과 5부 바지를 꿰어 입었다. 더위를 잘 타는 현우에게 5월의 따스한 날씨는 덥게 느껴졌다.

 

물론 현우도 한창 배고플 나이인 건 마찬가지였으므로 가방에 입고 왔던 교복을 쑤셔 넣고 얼른 보청기를 꺼내 귀에 끼웠다. 오른쪽에 먼저 끼우고 왼쪽을 끼우려는 순간, 라커룸 문이 대차게 열리더니 민혁이 척척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현우는 얼른 왼쪽 보청기를 마저 끼웠지만, 민혁의 시력이 나쁜 것도 아니고 눈이 있는 이상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현우는 조금 굳은 얼굴로 멍하니 민혁을 마주보았다.

 

 

 

와 개- 배고파. 디저트 세 개 달라고 할 거야.”

 

 

 

그러나 민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가와 옆 라커에 기댄 채 말했다. 그런데도 현우가 어물거리며 반응이 없자 평소처럼 버럭 신경질을 낸다.

 

 

 

뭐 해? 너 땜에 치킨도 안 먹고 왔다고. 오늘 코다리 무침 나오는데.”

, 잠깐만.”

빨리, 빨리, 빨리-”

 

 

 

민혁이 짐을 챙기는 현우의 팔뚝을 장난삼아 툭툭 치며 재촉했다. 이상하다. 정말 못 봤나? 아니면…… 민혁이 못 본 척 해주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는 눈치가 아주 빨랐으니까. 현우의 표정이 잠시 미묘하게 굳은 것만으로도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알아채지 못했다는 가설보다 훨씬 신빙성이 있었다.

 

현우는 괜히 더 말을 꺼내지 않았고, 민혁은 여느 때처럼 빠르게 급식실로 뛰어가 세 번째 즈음에 위치한 식판을 빼들었다. 그리고 배식해주는 이모에게 애교를 떨어 장담했던 것처럼 디저트로 나온 작은 초코 케이크를 세 개나 쌓아서 받았다. 자리에 앉아서는 코다리 무침을 전부 현우의 식판에 옮겨 놓고, 세 개나 되는 초코 케이크도 하나 주었다. 애초에 다 먹지도 못할 걸 이렇게 많이 받은 건 현우가 초코 케이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식사 시간이었다. 석식은 모든 학생이 먹는 게 아니라서 급식실이 꽤 비어 있었다. 점심때에는 언제나 시끄러운 급식실이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진다. 쇠 수저가 스테인리스로 된 식판에 부딪치는 소리가 공연히 신경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현우는 오늘 메뉴가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 치고 바쁘게 수저를 움직이는 민혁을 흘끔거렸다. 분명 민혁은 고개를 식판에 박다시피 밥을 먹고 있었는데,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대뜸 말을 건다.

 

 

 

오늘 저녁 연습 해?”

 

 

 

현우가 흠칫 놀라 다시 민혁을 곁눈질했다. 민혁은 여전히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종종 그럴 때가 있었다. 민혁이 뒤통수나 정수리에 눈이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

 

 

 

으응. 하려고.”

나도 가도 돼?”

?”

 

 

 

현우는 힐끔이는 것을 그만두고 눈을 크게 뜬 채로 고개를 들었다. 숟가락은 떠먹으려다 만 그대로 소고기 뭇국에 빠져 있었다. 반면 민혁은 제가 무슨 말을 했냐는 듯 평이하게 수저질 하며 말을 이었다.

 

 

 

구경 할래, 너 수영하는 거.”

……너 물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괜찮아. 보기만 하는 건데 뭐.”

 

 

 

보통 때 같았으면 오후 연습이 끝나고 또 저녁 연습을 하겠다는 현우에게 질색하며 아주 물에서 살라고 했을 민혁이었다. 민혁은 욕조, 세면대, 물컵을 제외하곤 물이 고여 있는 곳이라면 치를 떨었다. 거기다 수영장처럼 사람이 잠길 만큼 깊은 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현우와 제법 친해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영장에 가보겠다는 소리를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가기 싫다는 말이라면 몰라도.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걸 감수하고도 갑자기 가겠다는 이유는 뭘까. 현우는 왜인지 긴장되는 기분에 잘 넘어가지 않는 밥을 먹지로 입에 밀어넣었다.

 

석식을 먹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이쯤 되니 현우는 정말로 민혁이 못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청기 크기가 작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보통은 기계의 생김새를 잘 모르니까. 하지만 수영장으로 가서 환복할 때는 다시 보청기를 빼야 될 테다. 현우가 공연히 입술에 침을 바르며 어색하게 수영장 라커룸 문을 열었다. 그런데 현우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민혁이 가볍게 툭 던지듯 말했다.

 

 

 

난 어차피 수영 안 할 거니까 그냥 먼저 내려간다?”

, …….”

 

 

 

현우는 복도 뒤로 사라지는 민혁의 뒷모습을 멀거니 보았다.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눈치가 빨랐다. 역시 못 본 척 해준 거였겠지……. 만약 민혁이 본 게 맞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현우는 자연히 이전에 자신이 가진 문제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했던 반응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수영을 시켜?’

하고 싶다는데 어떡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잖아. 가뜩이나 귀도 안 좋은데.’

좀 안 들린다고 그럼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라고 해? 당신은 애랑 얘기도 몇 번 안 해봤으면서…….’

 

 

 

, 라커룸 문이 소리나게 닫혔다. 보청기를 빼자 물속에 잠긴 듯 소리가 웅웅 울린다.

 

민혁은 수영장 안의 벤치에 얌전히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현우가 들어갔을 때 드러난 탄탄한 상반신을 보고 감탄한 것 빼고는, 그 뒤로 그저 수영 연습을 하는 현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종종 사진을 찍는 듯 휴대폰을 가로로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힐끔대며 몇 번인가 수영장 레일을 왕복하던 현우가 잠시 쉬려고 바깥에 걸터앉자 민혁이 쪼르르 달려왔다.

 

 

 

뛰지 마. 미끄러워.”

, 너 엄청 빠르다! 기록 재 볼까? 내가 재 줄게.”

수영 싫어한다며.”

 

 

 

현우는 민혁이 관심을 보이는 게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의 솔직한 칭찬에 어쩐지 쑥쓰러워져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민혁은 이미 휴대폰으로 스톱워치를 켜놓은 채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수영이 아니라 물이 싫은 거야. 근데 생각보다 바다랑은 되게 다르네. 여긴 물이 맑아서 바닥도 보이고, 엄청 넓지도 않고.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수영하는 애는 없었단 말이야.”

……그래?”

. 사실 바다는 그냥 보는 것도 싫어서 잘 안 가긴 했지만.”

바다는 어떤데?”

어떻긴……. 바다 안 가봤어?”

.”

안 가봤다고? 수영을 이렇게 잘 하는데?”

수영은 여기서도 할 수 있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 난 당연히 가봤을 줄 알았어. 근데 내가 설명해 봤자 나쁜 점만 말해서 모를 거야. 나중에 같이 갈래? 대신 난 멀리 있을 테니까 너만 들어갔다 와.”

그럴까?”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인상을 구기는 민혁에, 현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는 자연스럽고도 일상적으로 흘러갔다. 민혁은 말이 빨랐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고, 입이 큰 데다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편이라 입술 모양을 읽기도 쉬웠다. 덕분에 보청기가 없어도 말을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말을 할 때 항상 현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서…….

 

.

 

현우는 저가 멋진 사진을 몇 장 찍었다며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이는 민혁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아직도 눈치 채지 못했던 걸까. 민혁이 들이미는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현우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알고 있었어?”

 

 

 

주어라곤 없이 대뜸 던진 질문인데도, 민혁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로 집어넣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

언제부터?”

처음부터.”

……왜 말 안 했어?”

무슨 말?”

…….”

 

 

 

가령, 어쩌다 그렇게 됐냐든지. 아니면 얼마나 안 들리는지. 그것도 아니면 괜찮냐든지, 어떡하냐든지, 언제부터 그랬냐든지. 보통 사람들이 묻는 말 있잖아. 걱정하는 듯한, 혹은…… 불편하다는 듯한.

 

그것은 곧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든 게 마치 현우의 탓인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음을 소리없이 질책하는 무거운 침묵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민혁은 정말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오히려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어서, 현우는 입술을 달싹이다 꾹 붙여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민혁은 현우의 무릎 아래가 물속에서 흔들리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물어봤으면 좋겠어?”

…….”

그럼 물어볼게.”

 

 

 

글쎄, 물어봤으면 하면서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현우는 민혁과 불편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멀어질 거라면 최대한 빨리, 더 가까워지기 전에 멀어졌으면 했다. 어차피 일어나게 될 일이라면. 지금껏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아니, 사실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민혁이 그렇게 하겠다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영은 언제부터 했어?”

……수영?”

.”

 

 

 

현우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얼떨떨하게 되묻고는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답했다.

 

 

 

초등학교 3학년 쯤부터.”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어?”

, 몇 번 정도.”

무슨 수영을 제일 잘 해?”

자유형이랑접영.”

오늘 야식으로 족발 먹을래?”

……으응.”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질문이었다. 현우가 떨떠름하게 마지막 질문에 답한 후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습하고 밀폐된 실내수영장 안에서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마저 크게 느껴졌으나, 반대로 아무런 소음도 없을 땐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민혁의 목소리가 축축한 공기를 웅웅 울렸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런 거밖에 없어.”

……?”

이유가 있어야 해?”

너도 불편하잖아, 항상…… 신경 써야 하는 거.”

누가 그래?”

 

 

 

누구나.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도 않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또다시 삼켜낸 현우는 말을 아꼈다. 그런 현우를 보며 민혁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더니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나 입모양 크게 말하는 건 그냥 습관 돼서 그래.”

습관이라고?”

. 우리 엄마가 잘 안 들리거든.”

…….”

 

 

 

감정의 고조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 말에 현우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도 난청이 있지만 주변에서 비슷한 상황인 사람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나이대에는 더 그랬다. 노화로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은 때때로 볼 수 있을지언정 가까운 사람에게선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아, 근데…… 나한텐 이게 당연한 거야. 안 불편해.”

……그렇구나.”

…….”

 

 

 

민혁은 무슨 말을 꺼내려고 서두를 떼었다가 그만두었다. 어떤 의문들이 입가에 고였다가 삼켜졌다. 넌 왜, 불편하다는 대답을 듣길 원하는 것처럼 말해? 왜 이런 대답이 신기하다는 것처럼 반응해? 이제껏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준 적 없다는 듯이…….

 

민혁은 눈치가 아주 빨랐다. 어떨 때는 괴로울 정도로. 그래서 제 친구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지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또 미안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지겹게 겪었을 테니까. 민혁은 쪼그려 앉아 팔짱 낀 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거기에 턱을 살짝 괸 채로 어쩌면 생뚱맞아 보이는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는 해녀야. 직업이기도 하지만 우리 엄마는 물을 엄청 좋아하거든.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바다에 나가서 잠수하는 걸 좋아했대.”

…….”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깊이 오래 잠수해 있으면 수압 때문에 청력에 이상이 생긴대. 그래서 엄마는 내가 엄청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보청기를 꼈어. 그래도 멀리서 부르면 잘 못 들을 때가 많았고.”

 

 

 

현우는 말없이 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렷하게 들리진 않지만 어쩐지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내가 엄마한테 엄마는 왜 귀가 잘 안 들리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라……,”

…….”

엄마는 사실 바다 속에 살아야 하는 인어인데, 육지에 올라와서 사니까 그런 거라고. 난 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인어공주인 줄 알았어. 아니 알기만 한 게 아니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대. 무슨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푸흡,”

 

 

 

스스로의 어린 시절에 질린 듯한 표정의 민혁을 보며 현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도 민혁은 말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없었기에 어린 시절의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다니는 장면이 쉽게 상상됐다. 민혁 만큼은 아니어도 눈치가 없지 않은 현우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랬어.”

?”

난 선천적인 난청이지만……. 초등학교 때쯤부터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물속에 있을 때랑 느낌이 비슷했거든. 난 내가 사실 물고기인데 사람으로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현우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가다 말고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현우의 시선이 제 다리로부터 작게 파동이 일고 있는 수영장의 수면으로 내려갔지만 민혁은 여전히 아무 말 않고 현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 일로 아버지랑 싸우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물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졌어.”

…….”

어쩌면 너희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정말 바다에서 태어났어야 했을지도 몰라.”

……넌 누구였을까.”

글쎄, 인어공주는 아니었겠지?”

고래는 어때?”

모비 딕 같은?”

. 잘 어울려.”

 

 

 

그렇지만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향유고래라니, 너무 좁아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게 분명했다. 민혁이 보기에도 지금의 현우는 마치 좁아터진 수영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벽에 머리를 쿵쿵 치받는 커다란 고래 같았다. 바깥에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드넓은 바다라는 곳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옥죄이는 답답한 벽에 둘러싸여 죽어가는 고래.

 

적막이 흐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고요함에 어떤 불편함이나 동정심 따위의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충만함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희망 같은 것이 그 사이에 은근하게 피어올랐다. 민혁은 현우의 무릎 아래로 찰랑이는 투명한 파동을 응시하다, 부풀어오르는 듯한 감정에 반쯤 충동적으로 말했다.

 

 

 

우리 바다에 가자.”

? 그래, 언제?”

지금.”

지금?”

, 지금.”

 

 

 

민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기숙사 학생들은 오후 10시에 점호를 했다. 그 전엔 어디를 나갔다 오든지 상관없지만 반드시 10시까진 기숙사로 돌아와야 했다.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의 시간에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외박은 더더욱,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현우와 민혁은,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에 고속버스에 올라타 있었다.

 

 

 

우와, 나 이런 거 처음이야. 뭔가 엄청 떨린다.”

나도 처음이야…… 무단 외박…… 어머니께 혼날 텐데…….”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왠지 신나지 않아? 학생 중에 지금 바다에 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으응…….”

 

 

 

평일 저녁에 바다에 가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더라도 별로 없는 게 당연하다. 무단 외박을 밥먹듯이 하는 비행 청소년들도 근처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놀지언정 서너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바다에 나가진 않겠지. 민혁은 바다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학교에서의 일탈 행위 자체에 신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우는 부모님의 말이라면 항상 어겨선 안 되는 법칙처럼 삼아 왔기에 이 상황이 몹시 긴장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처음으로 규칙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바다에 간다는 사실이 뒤엉켜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학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걱정이나 긴장은 점점 흐려졌다. 어차피 이제와서 돌아가기엔 늦었으므로, 기대감에 흥분된 마음만이 남은 것이다. 어느새 현우는 학교로 돌아가 혼날 생각보다는 사진으로만 봤던 바다를 볼 생각에 들떠서 민혁과 떠들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표지판과 풍경을 보며 어디쯤 왔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중간에 한 번 들렀던 휴게소에서 간식거리를 사먹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이 고양감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그러다 보면 차창 밖에 별가루가 흐드러진 밤바다가 출렁인다.

 

 

 

밖에 봐봐, 바다다.”

…….”

 

 

 

현우가 창문 가까이 붙어 감탄을 내뱉었다. 어두워져 쨍한 태양이 사라진 틈을 타 은은한 빛을 뿜는 달과 별이 바다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도가 침에 따라 헤엄치듯 울렁이는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손을 모아 그 별을 떠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우가 눈에 띄게 큰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건 잘 없는 일이었기에, 민혁은 마치 자신이 바다를 만들어다 주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얼굴을 했다.

 

바닷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10분이 채 되지 않아서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게 출발한 탓에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지나 있었지만, 그들을 질책할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이 자리에 없었다. 점호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친구 몇 명과 담당 선생님께 전화가 왔으나 두 사람은 부러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돌려 놓고 가방에 처박아 놓은 채였다.

 

아직 완연한 여름이 아니었기에 바닷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그럼에도 현우는 춥지도 않은지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방과 신발, 양말을 벗어둔 채 얕은 파도가 찰랑이는 해안에 발을 대어 본다.

 

 

 

안 추워?”

생각보다 차갑진 않아.”

 

 

 

민혁은 멀찍이서 팔짱을 낀 채로 발장구 치는 현우를 바라보았다. 내일이 되면 어른들에게 혼날 테고, 다시 그 비좁은 수영장으로 돌아가야겠지만, 현우는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비단 바다라는 장소 때문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그 모습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견뎌내고 있는 듯한 무거운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즐거워 웃는 그 때문에.

 

바다는 여전히 까만색이었다. 민혁이 아는 바다는 매체에서 종종 표현되는 파란색이 아니었다. 바다는 파란 적이 없었다. 늘 안으로 삼킨 것을 다시는 뱉어내지 않을 듯 새까맸을 뿐.

 

민혁이 바다를 무서워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수평선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캄캄한 수면은 깊이를 알 수 없다. 안정적인 것이라곤 무엇 하나 없었다. 기댈 벽이 없고 잡을 줄이 없고 디디고 설 바닥이 없었다. 그것이 민혁을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현우는 같은 이유로 바다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탁 트인 수평선과, 딱딱한 벽이나 바닥으로 자신을 가둬놓지 않는 바다가 현우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 줬다. 민혁은 언제나 바다가 감옥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현우에게 있어선 건물과 사람들이 빽빽히 늘어선 그런 곳들이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민혁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짓단을 걷어올렸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간 현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 뿌연 포말이 부서지는 연안에서 걸음이 주춤거리며 멈췄다.

 

 

 

손현우.”

? ……들어오게?”

.”

무섭지 않아?”

무서워. 잡아줘.”

 

 

 

사춘기 남학생끼리 손을 잡는 일이 낯뜨거울 만도 하건만 현우는 꺼리는 기색 없이 다가와 민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미지근한 것보다 좀 더 차가운 바닷물을 헤치고 다니면서도 현우의 체온은 한결같이 평균보다 따뜻했다. 민혁은 현우의 손을 잡고 아주 어렸을 때 이후 처음으로 바다에 자발적인 걸음을 내딛었다. 얕은 파도가 발목을 간질이고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과 발등을 쓸었다. 금세 발목 아래가 어두운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민혁이 잡은 손에 힘을 주자 현우가 안심시키려는 듯 마주 잡아왔다.

 

 

 

안 들어오겠다며.”

그래도…….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같이 들어오는 게 좋잖아.”

괜찮아?”

……괜찮아.”

 

 

 

파도는 생각보다 온순하게 발목을 감쌌고 맞잡은 손을 통해서는 기분 좋은 맥박이 흘러들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전혀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바닥이 있었고 만약에 이 바닥이 사라지더라도 현우는 절대 제 손을 놓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가만히 자신의 종아리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지는 별들을 내려다보았다. 규칙적으로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어쩐지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민혁이 섬에 있을 때에 파도 소리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짐승의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민혁은 발로 물을 팍 차보았다.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어 각자 옅은 파동을 일으키다 이내 잠잠해졌다. 현우가 잡은 손에 살짝 더 힘을 줬다가 풀기에 고개를 돌렸더니 언제부터인지 이쪽을 보고 있다.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

고마워.”

 

 

 

민혁이 눈을 크게 떴다가 잡지 않은 손으로 뜨거운 귀를 매만졌다. 명치께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갈비뼈 안쪽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민혁은 공연히 귀 뒤쪽을 박박 긁었다. 그러곤 일부러 고개를 휙 돌리고 불퉁한 체 하며 말했다.

 

 

 

내가 좋아서 친구하는 건데 뭐가 고마워.”

?”

……너 좋다고.”

파도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너 좋다……!”

 

 

 

, 까지 말하기 전에 돌아본 현우는 그 까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휘어 웃고 있었다. “, 너 일부러 그랬지!” 민혁은 목구멍이 탁 막힐 정도로 열이 오르는 기분에 괜히 바락 소리쳤지만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맞잡은 손을 떨쳐내고 도망가려 해도 현우가 꽉 붙잡자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그나마 어두워서 달아오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민혁이 심통 난 얼굴로 잡힌 손을 흔들었다.

 

 

 

나갈래. 추워.”

알았어.”

 

 

 

현우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민혁을 따라 나왔다. 조금 쌀쌀하긴 해도 초여름이라 아주 춥지는 않았기에,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 앉아 젖은 발과 붕 떠오른 마음을 식혔다. 어차피 어디에 들어가고 싶어도 청소년은 10시 이후에 피시방이나 숙박업소엔 갈 수 없었으므로, 가 봤자 편의점일 뿐이다. 둘은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 가고, 해가 뜨고 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민혁과 현우는 딱 붙어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보았다. 파도는 계속해서 치고 달은 머리 위를 가로질러 갔지만 그럼에도 해안가에 있는 건 둘 뿐이었다. 두 사람은 몇 번인가 졸다가, 캄캄했던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는가 싶더니, 태양을 빠트린 듯 환한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수평선을 내내 바라보았다.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민혁은 어릴 적부터 어디서든 바다가 낭만적인 장소로 묘사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그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은 듯 했다…….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출발해도 등교 시간에 딱 맞출 순 없겠지만 둘 중 누구도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말없이 버스에 올라타 마지막으로 햇빛이 산란하는 바다를 바라본다. 교칙을 어기는 게 아니더라도 바다는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다시 오게 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감정은 결코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