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last and always


시라노 프로포즈 조작단

익명의 션른러

 

 

 

이민혁이 프로포즈란 단어의 뜻을 알지도 못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의 프로포즈는 정해져있었다. 장소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한적한 바다, 시간대는 저녁놀이 아름답게 내리는 시각.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티브이 속 한 장면이 민혁의 로맨틱을 그리 정의했다.

놀랍게도 그 로맨틱이란 것은 이민혁이 한 살, 두 살을 넘어 열 살을 먹고도 변하질 않았다. 아니, 외려 더욱 단단해져 콘크리트가 형님이라 부르며 호형호제를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민혁은 진심으로 이 프로포즈가 먹힐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 어이없을 정도로 강한 신뢰가 어디서 왔느냐, 묻는다면 답을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바로 이민혁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허허 웃으며 넘겨줄, 그리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너라면 다 좋아라고 답해줄 존재. 청춘 18세 이민혁과 목하 열애 중인 열정 19세 손현우 되시겠다.

의자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던 이민혁의 얼굴 위로 바보 같은 미소가 헤벌쭉 그려졌다. 안개처럼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고민들 사이로 둥실 떠오른 손현우 탓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 이민혁의 표정이 다시금 우중충해졌다.

 

 

씨발, 수능이 끝났어도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미친 새끼. 니 같으면 하겠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수능 끝난 고삼도 학생이야!”

 

 

분이 풀리지 않는 지 책상을 내리치며 포효하는 이민혁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들이 쏟아졌다. 수 십 개의 눈알들이 저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이민혁은 꿋꿋이 그들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에 이민혁의 옆자리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채형원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물었다.

 

 

또 왜 지랄인데? 사람 말을 해. 짖지 말고.”

 

아니이……. 현우 형이 친구들이랑 놀러 다닌다고 나랑 안 만나주잖아…….”

 

뭐야? 어제도 데이트 했다며.”

 

두 시간 잠깐 만난 게 무슨 데이트! 예전엔 하루 종일 붙어있었는데, 요즘은 저녁 때나 돼서야 얼굴 잠깐 보는 게 끝이라고.”

 

늘 하던 생각이지만, 현우 형은 진짜 너 잘못 만났다.”

 

 

차게 식은 눈빛과 함께 떨어지는 쯧쯧쯧 소리에 이민혁이 눈에 불을 킨다. 채형원의 문제집이 구겨지든 말든, 그의 목에 암바를 건 이민혁이 이를 득득 갈며 낮게 중얼거렸다.

 

 

우리 완전 천생연분이거든? 형도 나 만난 게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은 일이라고 했거든?”

 

, ! 아오, 이 개새끼는 힘도 없는 게 이딴 것만 잘하지.”

 

궁금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세상에서 첫 번째로 좋은 일은 나를 알게 된 거라고 했어.”

 

염병을 떤다, 염병을 떨어…….”

 

 

어느새 채형원의 목을 조르고 있던 팔도 풀어버린 채 제 양 볼을 감싸 쥔 이민혁이 발갛게 얼굴을 상기시켰다. 이리저리 몸을 배배 꼬며 던진 말에 앞자리에서 얌전히 제 공부만 하고 있던 유기현이 샤프를 집어던졌다. ,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얼굴을 직격한 플라스틱 덩어리에도 이민혁은 실실 웃기만 했다.

 

 

솔로들은 이 행복 모를 거다, ?”

 

니 같은 커플 될 바엔 평생 솔로로 살려고. 입을 닥치던가 나가던가.”

 

왜용? 부러워서 그래용? 깨 쏟아지는 혀기혀누가 부러워서엉?”

 

에라이, 씨발. 내가 나간다. 내가 나가.”

 

 

진심으로 반을 박차고 나갈 생각인지, 책상 위의 문제집이며 필통을 거칠게 쓸어 담아 품에 안는 유기현을 낄낄 대며 바라보던 이민혁이 순간 눈을 빛냈다. 예비고3의 필수품인 수특 표지에 덜렁 붙여진 바다 사진 스티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손현우가 바쁘다? 수능 끝난 고삼들이 한가해서 괜히 손현우를 찔러보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무엇인가.

비어있는 손현우의 주변을 성채로 메워야 했다.

고작 연애 놀음에 불과한 이 진흙 같은 커플링이 아니라, 철통같은 결혼 지를 끼워줘야 했다!

이런 데만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이민혁은 어느새 착착 계획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계산이 시작되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0. 유기현이 짐을 다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 그 순간이었다. 이민혁의 큰 손이 물귀신처럼 유기현의 팔목과 채형원의 팔목을 동시에 붙들었다.

 

 

. .”

 

또 뭔데?”

 

얘들아. 이 형님이 아주 기가 막힌 계획을 떠올려냈다. 고삐리에 불과한 너네가 아주 빛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생기부에 못 쓰는 거면 난 빠질래.”

 

나도.”

 

어우, ! 이 학력주의에 빠진 것들아! 얘기 좀 들어보고 정하라고!”

 

 

계획의 첫 단계가 나오기도 전에 빠르게 이민혁을 떨쳐내려는 둘의 노력은 만만치 않은 이민혁의 손아귀 힘 탓에 실패했다. 이렇게 나오는 이민혁은 제 할 말이 끝나기 전까진 절대 손을 놓아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붙잡힌 둘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태세로 전환한 채 턱을 비딱하게 들었다.

 

 

말이나 해 봐라. 들어는 줄게.”

 

형이 바쁜 이유가 뭐야. 주변에 친구를 빙자하고 찝쩍대는 놈이 많다는 거 아냐.”

 

일단 전제부터 잘못되긴 했는데, 그래서?”

 

그러니까 내가 형을 붙잡아 두는 거지. 결혼으로!”

 

……이 시간이면 사탐 문제 하나를 풀었다. 시간 아까우니까 때려쳐.”

 

동의. 백 만번 동의.”

 

야아!”

 

 

이민혁의 뻘짓에 소비된 시간만 몇 년인가. 이제 그들은 정말 핑핑 놀기의 마지노선 앞에 서있는 상태였고,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었다. 둘은 저 개자식이 아무리 입을 털어대도 절대 흔들리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이민혁이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럴 예정이었다.

 

 

생각해봐. 우리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시간이 나겠냐? ? 고삼 되면 나도 현실 생각해서 공부 빡! 내신 빡! 할 거거든?”

 

고삼 돼서 내신 챙겨봤자 네가 갈 길은 하나뿐이란다. 재수.”

 

내 재수랑 이건 상관이 없지! 아무튼 이번만 도와주면 진짜 내년엔 입 꾹 다물고 충실한 고삼민혁이가 된다. 손현우……는 안 되고. 내 커플링……도 안 되고. 대신 내 눈썹을 건다!”

 

진짜 너랑 소꿉친구인 건 신이 내린 시련이 틀림없다. 주여…….”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투닥거림이 이어지긴 했으나, 이미 둘의 마음은 정해져있었다. 아무리 진저리를 쳐도 결국 셋이 젖병을 쪽쪽 빨 때부터 과수원을 쪽쪽 빨 때까지 친구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케이를 받아도, 거절을 당해도 이 재밌는 꼬라지에 참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울 모처 남고에서 시라노 프로포즈 조작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공부에서 벗어나자 모든 것이 즐거웠다. 장미꽃다발을 주문하고, 고등학생의 수준에서 살짝 비싼 약혼반지도 주문하고-결혼반지는 성인이 돼서 월급을 싹싹 긁어모아 까르띠에를 해줄거라며 잔뜩 신난 이민혁은 덤이다-, 장소까지 완벽하게 물색을 마쳤다.

고삐리에게 면허 따윈 없으나 이민혁의 꿈은 원대했다. 최대한 멀리, 저 멀리로 떠나 기왕이면 비행기가 끊겨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큰 그림을 그려낸 이민혁이 정한 장소는 제주도. 꽃다발이며 이벤트를 준비해줘야 하는 시라노 프로포즈 조작단의 티켓 값까지 대려니 등골이 다 휘었다. 그렇게 조던 운동화를 사겠다며 차곡차곡 모아둔 몇 달치 용돈을 깨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이민혁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상태였다.

평소보다 훨씬 반짝거리는 얼굴에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민혁의 남자, 손현우가 귀 뒤를 긁적이며 물었다.

 

 

민혁아, 너 오늘따라 좀 잘생겨진 것 같아.”

 

오늘따라아~?”

 

원래도 잘생겼는데, 오늘은 더 잘생겼네.”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거 아냐? 요즘 형은 맨날 친구들 만난다고 나랑 안 만나주고! 그러니까!”

 

우리 어제도 봤는데…….”

 

어제 낮에 잠깐, 아주 잠깐 봤잖아! 형은 그걸로 만족이 돼? 난 안 돼!”

 

그래, 그래. 그래도 오늘은 같이 여행 가는 거잖아. 너 학교 가야해서 1박은 안 된다 해도…….”

 

그치이!”

 

 

순식간에 기분이 풀려 헤헤 거리며 팔뚝을 끌어안는 이민혁에 손현우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수속을 밟을 때도,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심지어는 내려서도 땀이 차도록 팔뚝을 끌어안고 있던 이민혁이 떨어져 나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제주도 관광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도 딱 붙어있던 그는 식당에 들어가서 각자 자리에 앉아야 하는 때가 오자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식당은 이게 싫어. 둘이서 같이 껴안고 먹고 싶을 수도 있잖아.”

 

난 아닌데.”

 

, 혀엉! 형은 미녀기랑 껴안는 거 싫어? 미녀기가 밥도 먹여주고, 물도 먹여주고, 그럴 건데? ? ?”

 

밥 먹을 땐 밥에 집중해야지, 민혁아.”

 

난 밥 먹을 때도 형한테만 집중하는데.”

 

……나도 가끔 그래.”

 

, 뭐라고? 손현우, 나 못 들었어. 빨리 다시 말해줘. 크고 잘 들리게!”

 

들었으면서 뭘. 주문이나 하자.”

 

 

저도 제법 간지러운 말을 헀다는 자각은 있는지, 손현우의 귓등이 새까맣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민혁이 주체되지 않는 입매를 잔뜩 꿈틀거렸다. 그 때, 이민혁의 눈에 들어온 무리가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새카만 의복으로 감싸고 있는 둘. 시라노……, 아니, 대충 줄여서 시포조였다.

이민혁이 준비한 시나리오는 이랬다. 어라, 여행 왔는데 오늘따라 운이 따르네? 어라, 오늘 좀 우연처럼 좋은 일만 생기네? 하다가 저녁놀이 지는 바다에서 짜잔, 반지와 꽃다발! 뒤에서 팡팡 터지는 폭죽!

뻔하고 유치하지만 그것만큼 로맨틱한 것이 없지 않은가. 이 곳에서도 이미 정해둔 조작이 있었다. 몰래 음식에 작은 종이를 숨겨두고, 그것을 찾아내면 이벤트에 당첨 됐다며 (개구라) 오늘 음식은 공짜라고 해주는 이벤트. 물론 그 모든 메뉴와 시포조의 식사는 이민혁이 계산한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시포조의 조작은 처음부터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손현우가 고른 메뉴가…… 스테이크였던 것이다. 기름과 버터에 섞여 젖은 종이가 언제 어디서 칼에 잘려 손현우의 입에 들어갈지 모르는!

여기서부터 이미 등골이 서늘한 게 불안불안했으나, 이민혁은 이것이 모두 성공을 위한 발돋움이라 생각했다. 오늘따라 손현우의 손힘이 시원찮을 수 있고 그러면 우리 형이 아프다는 건가? 안 되는데!-, 종이가 운 좋게 버터의 늪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런 희망을 갖고 시포조에게 허락의 눈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이민혁의 반짝이는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서버의 손 위에 놓인 새까만 그릴을 보고 새까맣게 물들 수밖에 없었다.

버터가 잔뜩 얹어져 아직도 지글지글 끓고 있는 스테이크는 마치 제게 , 네 종이 죽었어. 쉽던데?’하고 비아냥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놓지 않고 있던 희망의 끈은.

 

 

여기 진짜 맛있다. 맛집이래?”

 

……. 스테이크가 제일 유명한 메뉴래…….”

 

그럴 줄 알았어. 너도 좀 먹어, 민혁아. 언제 또 오겠어?”

 

먹고 있지, 있어…….”

 

 

손현우의 해맑은 말에 처참히 타버렸다. 아무리 둔한 남자라 해도 밑에 종이가 깔려있다면 분명 알아차렸을 터인데, 스테이크가 바닥이 나다 못해 깔끔히 사라질 때까지도 손현우는 종이의 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대충 이벤트를 말아먹은 주역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이민혁이 손현우 몰래 뻔뻔하게 스테이크를 입 안에 집어넣고 있는 시포조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들도 나름의 변명이 있는지, 급하게 문자가 날아왔다.

 

 

[ㅈㅅ 여기 방침상 음식에 이물질 넣는 건 안 된다네]

 

[이런개씨발미친양심도없는새끼들이죽고싶냐진짜돌아가면공ㅂ]

 

 

민혁아, 뭐해?”

 

? 아무것도 아냐. 친구가 뭐하냐고 문자 와서.”

 

기현이? 아니면 형원인가?”

 

, 걔네긴 해. 그런데 왜 걔네 이름을 이렇게 정겹게 불러? 성 붙여!”

 

아이, 별 걸로 다 그런다.”

 

그럼 나도 형 친구들 막 성 떼고 불러? ? 창균이형! 주헌이형! 잘 지낸데?!”

 

걔네 너보다 형 아니잖아.”

 

아무튼!”

 

 

이민혁의 자그마한 질투심이 왁왁 거리며 분위기가 한층 더 풀어졌다. 입술이 댓발 나와있던 이민혁도 앞에서 웃고 있는 손현우의 앞에서 점차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고작 이거 한 번이 아니지. 준비해둔 게 10가지는 넘는다고. 설마 그 중 하나도 안 되겠어?

 

 

……이럴 수는 없어.”

 

왜 그래? 다리 아파?”

 

아냐. 안 아파. 그냥…… 인생이란 건 참 내 맘대로 안 되는구나? 영화는 현실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 갑자기…….”

 

 

그래, 하나도 안됐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플래그 뿌리고 다니지 마라, 하는구나! 이 참에 제대로 느꼈다.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좌절하고 포기한다면 이민혁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철벽에 스트레이트라는 손현우의 장벽을 죄다 깨고 연애에 성공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의 최대 강점은 이런 끈질김에서 나왔다.

다행히 둘이 바다에 도착했을 땐, 이민혁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저녁놀이 아름답게 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손현우가, 내 사람이 완벽한 시간대에 꿈에 그리던 장소 앞에 서있다는 사실에 문득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바다를 보며 괜시리 파도를 찰박이던 손현우가 민망한지 뒷머리를 매만지며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이민혁을 향해 돌아섰다. 그 찰나의 순간이, 이민혁에겐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손현우가 돌아보는 그 잠깐 잠깐의 모습이 영화처럼 컷이 나누어져 보였다.

그 순간, 이민혁의 가슴이 외쳤다. 지금이다. 비록 멀리서 빨빨 거리고 있는 시포조 놈들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준비는 한참 먼 것 같지만. 아직 꽃다발도, 폭죽도 없었지만. 적어도 프로포즈에 가장 중요한 반지는 제 손에 있었으니.

주머니에 푹 찔러두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꺼내드는 손이 덜덜 떨렸다. 고작 18년 살았다지만, 그 짧은 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이정도로 떨어본 적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손현우의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느꼈다. 이 남자는 내 남자고, 지금 놓치면 다시는 찾지 못할 마지막 사랑이라고. 어린애처럼 훌쩍거릴 것만 같은 기분에 억지로 숨을 참고 눈물을 억제한 이민혁이 손현우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뭐야, 이거?”

 

손현우.”

 

…….”

 

, , 나랑…… 결혼, 해주라!”

 

 

바보같이 말도 더듬고 멋들어지게 준비해둔 고백 멘트는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이것보다는 더 멋있게, 정말 손현우의 가슴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준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어렵사리 반지 케이스를 연 이민혁이 손현우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허공에 뻗어진 손은 찬 바닷바람에 서서히 식어만 갔다. 시발, 설마 이거까지 실패야? 마치 식당에서의 첫 실패가 이 때를 예견한 것만 같아 등골이 싸해졌다.

가오는 상하지만, 지금이라도 농담이라고 넘기며 반지 케이스를 탁 닫아버리고 웃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그 생각을 현실로 반영하기 딱 0.5초 전. 뜨거운 손끝이 이민혁의 양손을 맞잡았다. 평소에도 체온이 높은 편이긴 하나, 제 손이 차가워진 상태에서 닿으니 정말 손등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은 붙잡혔는데, 들리는 말은 없고. 계속해서 귓전을 때리는 것은 오직 파도소리 뿐이었다. 결국 이민혁은 용기를 내 슬금슬금 실눈을 떴고, 곧 동그랗게 눈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뭐해. 일어나서 안 끼워 주고.”

 

, , 어어…….”

 

내가 로맨스 영화 같은 건 잘 안 봐도 그건 알 거든. 민혁이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그치, 내가 더 잘 알지. 아는데……. 진짜로?”

 

그럼 가짜일까?”

 

, , , ……!”

 

?”

 

 

자신이 예상한 떨떠름함, 냉정함, 뭐 그런 부정적인 감정 하나 없는 손현우의 발그스름한 얼굴에 이민혁이 기어코 눈물을 떨궈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게 뭔지도 모르는지, 냅다 손현우의 등을 끌어안은 이민혁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코가 막혀 먹먹한 목소리로 내가, 내가 지짜 잘하께, , 나 형 지짜 조아해, 아니, 사랑해! 외치는 이민혁은 그 어떤 얼음도 속절없이 녹아내리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푸슬푸슬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으며 그를 마주 안아준 손현우가 이민혁의 등을 토닥였다.

 

 

참고로 난 이민은 안 갈 거야. 그러니까 혼인 신고는 못하는 거지.”

 

뭐 어때! 내가 지금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면 되지! 동성결혼 법제화아악!”

 

그럼 진짜 결혼이고 뭐고 헤어질 거야. 그건 기억해둬.”

 

……으응. 아무튼 너무 좋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아.”

 

그것도 안 되는데.”

 

 

달콤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의 뒤로 빈약한 폭죽이 픽 픽 날아간다. 얼마나 대책 없이 저렴한 폭죽을 사온 것인지, 몇몇은 하늘로 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피시식 떨어졌다. 그 쪽팔린 꼴에 새빨개진 얼굴의 이민혁이 작게 변명했다.

 

 

난 좀 비싼 폭죽 사라고 했어. 저 새끼들이 돈 남겨먹겠다고 저딴 거 사온 거야.”

 

, 이거 네가 준비한 거야?”

 

으응……. 너무 별 거 없지.”

 

, 난 좋은데. 우리만 좋으면 됐지, .”

 

……그치? 헤헤.”

 

 

당최 떨어질 생각을 않는 커플, 이제는 부부가 된 둘의 너머에서 롱패딩을 둘둘 두른 채 선글라스를 끼고 밤바다를 손으로 짚어가며 폭죽을 터트리던 시포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기 전에도 역겨웠는데, 다음주부턴 어떻게 버티냐?”

 

이민혁 동성 결혼 법제화 시위하라고 내보내자.”

 

그거 좋네.”

 

우린 최선을 다했다. 어쩄든 성공은 했잖아?”

 

솔직히 이런 째끄만 예산으로 이정도면 완벽하다고 생각해. .”

 

 

이 뒤로도 작은 소란들이 있긴 했으나, 그건 손현우와 이민혁의 사실혼에 비하자면 매우 사소한 것들. 비록 열여덟과 열아홉의 치기 어린 약속이었지만, 이를 맺은 이들이 워낙 한 고집 하지 않나. 장본인들도, 주변인들도. 저것들은 머리가 하얗게 세서도 저러고 살 거라며 덕담을 해댔다. 비록 조작은 해보지도 못했으나 결국 성공했으니 된 일. 이민혁은 이따금 이 때를 회상하며 만약 시포조, 시라노 프로포즈 조작단이라는 업체가 정말 있었다면 진심을 다해 별점 1점과 불호 리뷰를 남기리라 결심하곤 했다.

 

 

★☆☆☆☆

[일 더럽게 못함 ㅉㅉ 솔직히 내 결혼은 내가 성공시킨 거임 손현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