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거지만 촬영장은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한테 독이 오를것 같아서 민혁은 스탭이 주는 골프우산을 들고 폐공장 밖으로 나왔다. 매미가 계속 울고 시끄럽지만 이 쪽이 훨씬 나았다. 주변이 거의 노지에다가 잡초만 무성해도 차라리 좋았다.
주머니에 넣어온 전자담배를 물고 슬리퍼를 직직 끌며 멀찍이 보이는 창고로 향했다. 창고에 가까워질 수록 잘그랑거리는 금속성이 들렸는데 꼭 사슬 소리 같았다. 모퉁이를 돌자 보인것은 큰 개 한마리와 반팔 반바지를 입은 남자 한명이었다. 남자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안전모를 바닥에 내려놓고 개의 머리를 양손으로 주물럭대며 얼러주고 있었다. 바닥엔 한눈에 봐도 쉬어보이는 짬밥이 담긴 밥그릇도 있고. 밥 챙겨주러 온건가. 왠지 모르게 시선을 빼앗겨 민혁은 가만히 짝다리를 짚고 서서 개와 남자를 지켜봤다. 사실 이유는 알고있다. 남자의 두상 때문이다. 민혁은 두상이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그야...다른거 다 돈주고 살 수 있어도, 두상은 돈 주고 못사니까...
남자는 밥그릇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썼다. 개한테 자꾸 말을 걸었다. 야 생선머리가 있다. 뼈도 있네. 이거 시래깃국이네. 거의 짜글이잖아. 밥만 챙겨달랬더니 진짜 밥만 챙겼네. 혀를 쯧 차고 손목을 휙 털어 하수구쪽으로 짬밥을 버렸다. 그리고 다소 어기적대는 걸음걸이로 수돗가로 가서 물을 틀고 밥그릇을 건성으로 씻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그게 다 추적추적 젖고있는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민혁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가 인기척에 힐끔 일별했다. 누구냐고 하려나, 그런데 그 뿐이었다. 남자는 창고에서 사료포대를 꺼내와 밥그릇에 부었다. 개가 코를 박고 첩첩 먹었다. 그동안에는 물그릇을 갈아줬다. 찰랑대는 물그릇을 바닥에 두고, 편하게 먹으라는 듯이 개한테서 조금 물러나준다. 비로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얘 이름 구구요."
민혁이 대답을 않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민혁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아주아주 기특해 죽겠다는 눈으로.
"털이 구구크러스트같으니까 구구예요."
그러고 웃는데 콧잔등이랑 광대뼈가 벌겋게 익어있었다. 이 근방은 공단이니까 생산직 뭐 그런일을 하는건가? 이 땡볕에 썬크림도 안 바르나...
"아저씨 이름 뭐예요?"
"아저씨...? 아저씨 아닌데."
"명함 있어요 그럼?"
"어 네 있긴한데요."
남자가 지갑을 열어서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을 받은 민혁은 명함과 남자와 남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번갈아보았다. 대리 손현우. 대놓고 사람을 가늠하는 중인데 신경도 안썼다. 온 신경은 구구에게 있었다. 혀를 길게 빼고 헥헥대는 구구의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쓰다듬었다. 구구는 머리통에 비해 귀가 유난히 작았다. 햄스터같이.
"저기요."
"네?"
"모르는 번호로 연락와도 받아요."
"그래요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깐."
어려운 일이 아닌건 맞는데 그 말이 이상해서 민혁은 고개를 기울이고 물끄러미 현우를 보았다. 한마디만 더 해달라는 뜻이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가 예측이 안됐다. 그런데 현우는 여전히 구구를 주무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쳐다보면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안 볼 수가 없는 얼굴인데 이게 안먹히나? 손에 들고 있던 전자담배를 다시 물고 민혁은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스탭들이 민혁씨 땀나면 안되는데 어디 갔었어 하고 힐난했다. 안미안하지만 미안하다며 웃고 전자담배를 흔들어보였다. 누군가 손을 뻗어 민혁의 로브를 벗겼고 민혁은 다음 착은 뭐야? 물으면서 탈의실로 들어섰다.
촬영이 끝나고 냉동차처럼 만들어달라는 민혁의 주문에 따라 밴은 얼어붙을것 처럼 식어 있었다. 민혁은 의자를 젖혀 부은 다리를 길게 뻗어 눕고 찬찬히 명함을 보았다. 네이버에 회사 이름을 검색해봤다. 청영이엔지. 어. 뭐야. k그룹 계열사래. 회사 크네. 민혁은 홈페이지를 들어갔다가 그 회사의 주가도 확인했다. 대리 손현우. 손현우... 이름같이 생겼다.
그동안은 바빴다. 화보도 찍어야 되고. 인스타도 해야되고. 아는 형이 유튜브 한다고 도와달래서 가방 소개 하는것도 찍었다. 친한 디자이너가 갑자기 단편영화를 찍는대서 대사없으면 하겠다 그랬더니 대사를 다 없앤채로 시나리오를 갖다 맡겼다. 돌려 거절한건데 죽자고 달려드는 바람에 민혁은 꼼짝없이 찍었다. 그게 또 어느 영화제에 초청이 되었다. 처음으로 레드카펫도 밟았다. 영화 하나 찍은걸로 내내 인터뷰를 돌다가 민혁은 심야 라디오 게스트를 끝으로 겨우 예전의 패턴을 찾았다. 촬영장에 갔더니 피부가 안좋아졌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아기상어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촬영장을 활보하는 개 한마리. 크기는 더 작은데 그 개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누구 개야?"
"유실장님이 키우는 개. 귀엽지?"
아는 개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개를 아는 개라고 할 수 있나? 얘 이름 구구요 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개 이름이 구구였다.
"저 개는 저런 종이 있는거야?"
"어쩌고 테리어라는데 여우쫓던 개래. 원래 디게 크다더라? 가정견용으로 개량해서 나왔대. 영국에서 살던 혈통 좋은 개래."
혈통? 민혁은 잔뜩 신이 난 그 개를 쓰다듬었다. 이름이 에드워드란다. 영국 개라서 에드워드야? 유실장이 지을 만한 이름이네. 스탭이 검지를 입에 갖다대면서 쉿쉿 했다. 유실장님 들어. 듣등가. 민혁은 구구와 그 남자를 생각했다.
누가 촬영용 풍선을 줘서 그걸 들고 귀가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염없이 위로 향하는 숫자를 보며 그런데 그날 무슨 옷을 입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날 그 명함을 한참이나 보다가 그 회사를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그러다가 주머니에 쑤셔넣었는데, 그게 반바지인것 까지는 기억이 났다. 민혁은 반바지 반바지 입으로 외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을 벗어던지고 옷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코끼리 반바지인가? 페이즐리 무늬였나? 이건가 저건가? 여기저기 찔러넣어 보다가 손에 걸리는 종이를 낚아챘다.
청영이엔지 대리 손현우.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저장했다. 새로 추가한 친구에 손현우가 떴다. 프로필 사진은 호텔 수영장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뒷모습 사진이었다. 벗으면 저렇네. 민혁은 1:1채팅을 눌렀다. 저기요 라고 보내고 밥을 먹으러 나오라고 할지 차를 마시러 나오라고 할지 고민했다. 근데 이 사람은 회사원이니까. 주말에 만나야되나? 난 주말에 바쁜데. 민혁은 일정을 확인하고 주말에 뭐해요 라고 보냈다.
현우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셨는데 삼분의 일이 줄어들었다. 하마야 뭐야. 민혁도 커피를 한모금 쪼르륵 마셨다.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거 같드라고요?"
"많이 어디서요?"
"인스타 뭐 이런데서. 좀 찾아봤어요 그래서."
"어땠어요?"
"모델이죠 그러면?"
"네 이것저것 찍어요."
"걷는것도 해요?"
"걷는거요?"
"패션쇼."
"어릴땐 했는데 지금은 안해요."
"지금 안어려요?"
"내가 말하는 어릴때는 스무살 스물한살 빼짝 말려도 거뜬할 시절이에요."
무슨 일을 하는데 안전모를 쓰고 있었냐고 민혁이 물었다. 현우가 안전관리기사요. 했다.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하고 있는지, 안전장치들은 잘 작동되는지를 관리하는 거라고 했다. 전공은 경제학인데 먹고 살려다 보니깐 이쪽으로 오게 됐고, 재밌어서 자격증도 따고 그랬다고. 듣고 있자니 별로 재미는 없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할때마다 검지를 드는 손만 눈에 띄었다. 민혁이 현우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 있네요."
"운동해서요."
만져볼래요? 현우는 나머지 손도 내밀어 펼쳤다. 여기보다 여기 굳은살이 더 딱딱해요. 이쪽은 연해요. 왼쪽 어깨가 안좋아서 균형이 약간 안맞아요.
"민혁씨는 운동해요? 연예인들 막 관리하잖아요."
"저요? 저 안해요 굶어요."
"네? 그러면 안되는데?"
"그렇게까지 큰일 아닌데요? 운동해도 굶어야돼요 어차피."
"그래도 속이 든든해야지...안그럼 힘도 없고 짜증도 나고..."
"그래서 맨날 짜증나있어요 나는."
"그러니까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어 잠깐만요"
전화를 받자마자 매니저가 어디냐고 하길래 짜증이 났다. 아직 한시간 남았잖아. 그랬더니 또 늦게나올까봐 미리 전화했다고 했다. 미리 전화해서 짜증나게 하지말라고 이죽거리자 현우가 눈알을 굴렸다.
"일때문에 가봐야겠어요."
"아이고. 가셔야죠."
"담에 만나면 말놔요 형."
"응 그래 잘가."
보쌈을 시켰는데 실수로 대자를 시켰다. 현우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온 현우는 혼자 사는데 이렇게 넓냐면서 연예인 집은 다르다고 하더니 제멋대로 집을 구경하고 다녔다. 회사에서 구해준거야 내 의지랑은 상관없어. 현우는 중얼중얼 그래도 그렇지 집이 휑하다 야 하면서 비어있는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들락거렸다. 그렇게 냉장고와 찬장까지 싹 열어보곤 민혁아 너 뭐먹고 사니? 하고는 티비 앞에 앉아서 묵묵히 보쌈을 먹어 치웠다.
"그렇게 입안 가득 넣어먹으면 안 버거워?"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 니가 몰라서 그래."
"형은 먹방을 해라 부업으로."
"무슨 먹방은 너가 해야겠다. 팔목봐 나뭇가지야."
"나 통뼈야 형."
통뼈라서 살 좍좍 빼는거야. 그 말에 현우가 갸우뚱 했다. 너네 동네는 알 수가 없어. 민혁은 저기 저런거 다 쫄쫄 굶고 찍은 사진이야. 하면서 벽에 걸린 사진들을 가리켰다. 현우는 몸서리를 치더니 먹고살기 힘들다 민혁아 하곤 크게 쌈을 싸먹었다.
촬영장에 몸 좋고 잘생긴 사람 한명 올거라고 그랬더니 누가 단박에 알아봤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더니 검은 모자를 쓴 현우가 쭈뼛대며 들어왔다. 집에서 같이 떡볶이 시켜먹고 (민혁은 물론 몇입 먹지도 않았다) 놀다가, 촬영장에 놀러오겠냐고 물었더니 현우가 구경 해보고 싶다고 했다. 현우 몫의 의자도 주고 잘해주라고 당부해놨는데 현우는 양손 가득 뭘 들고와서 꾸벅꾸벅 인사하고 있었다. 아 저 티셔츠 입고왔네. 그 모자를 쓰고왔네. 이번에는 그 청바지를 입고왔네. 오늘은 그 신발을 신었네 그런 생각에 정신이 사나웠다. 같이 페어로 찍던 친구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민혁의 등을 꼬집었다.
"야 집중해라."
"아프다고."
줄서서 먹는 도넛이네요 하는 소리가 들리고 현우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뒤통수를 긁었다. 아이 뭐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어요. 누가 잠시 쉬었다 하자는 말이 들려서 민혁은 친구를 쏘아보고 총총 달려서 현우에게 갔다.
"뭘 또 사왔어?"
"빈손으로 오긴 그러니까 빵이라도 사왔지."
"도넛이잖아 왜 빵이라고 그래?"
"도넛이 빵이지."
"빵은 무슨...촌스러워."
민혁은 괜히 현우의 이마를 손으로 밀었다. 현우는 순하게 웃으면서 야 밥도 온거 같던데? 하고 두리번거렸다. 민혁은 도시락 두개와 커피 두잔을 들고 현우를 탈의실로 이끌었다.
"형 근데 왜 부를때마다 나와?"
"민혁이 니가 맛있는거 사주잖아."
"이건 내가 안샀는데?"
"이거 구성 되게 좋다. 비쌀거 같아."
"먹을거 사주면 다냐? 되게 쉽네?"
종이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열심히 먹던 현우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민혁이 움찔 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뭐야?"
"어 됐다."
"뭐냐고."
"머리 예쁘게 했는데 망가지면 안되잖아."
망가지면 다시하면 되지. 생각은 했는데 그게 말로는 안나왔다. 민혁은 우물쭈물 하다가 입닫고 빵먹으라고 현우의 입에 빵을 밀어 넣었다.
'혁아 오늘 너네 동네에서 회식 해.'
'어디 갈건데?'
'오복갈비살.'
둘이 갔을때 너무 맛있어서, 법인카드로 배터지게 먹고싶어서 상무님한테 여기로 가자고 했다고 현우가 그랬다. 너네집이 코앞이니까 자고 가려고 집에 왔다고 현우는 고깃집 근처에서부터 민혁의 집까지 걸어왔다.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새벽까지 토스트 파는 할머니 트럭에서 토스트도 다섯개 사 왔다. 현우는 졸린듯이 아닌듯이 티비 앞에 앉아서 토스트를 먹었다. 민혁은 맞은 편에 앉아서 말동무를 했다. 잊을만하면 현우한테 티슈를 내밀었다. 현우는 익숙하게 그걸로 입을 닦았다.
"어우 혁아 형 취한다.."
먹던 토스트를 내려놓고 현우가 눈을 깜박거렸다.
"야 양치하고 자라? 지금 잘 생각 하지마."
취해서 힘이 세진 현우는 자꾸만 머리로 민혁을 들이받았다. 버티다 못해서 옆으로 쓰러졌는데 현우는 허어 하고 길게 한숨쉬더니 민혁의 위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맨날 하는 이야기를 또 하기 시작했다. 사회 나와서 너같은 동생이 생길 줄은 몰랐고...참 좋은 인연이고...나는 진짜 니가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고...민혁은 현우의 주정이 끝날때까지 이마를 짚고 있었다.
서로 퇴근하고 나서 양꼬치 집 앞에서 만났다. 음식이 세팅되고 양꼬치가 익기 시작하자 현우가 맥주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형 차는 어쩌고?"
"대리 불러야지."
이 사람 이렇게 와구와구 먹는데 왜 싫지 않을까? 민혁은 별로 식탐도 없고 다이어트를 지나치게 오래해서 이미 한참전에 음식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먹방이라고 얘기 할 정도로 먹방도 싫어하고. 근데 왜 그럴까? 현우는 열심히 차근차근 근면성실히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러다가 날카롭게 말했다. 어 혁아 마늘탄다. 민혁은 생각에서 깨어나 허둥지둥 마늘을 집적거렸다. 마늘 상태를 보던 현우가 어 됐다, 하면서 흡족해했다.
"형 나 있잖아."
"얼음컵 하나만 더 시킬까? 얼음 엄청 빨리 녹네."
관자놀이에서부터 솟아서 교근을 지나 턱끝으로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을 현우가 손등으로 톡톡 두드려 닦아냈다. 그 윤곽선을 가만히 보다가 민혁은 손을 들고 얼음컵을 주문했다.
"뭐 할말 있었니?"
그러면서 현우는 고개를 빼고 양꼬치를 뒤적였다.
"형 나 매달리는거 안좋아하거든?"
"어 근데?"
그 양꼬치에서 눈 좀 뗄 수 없을까? 진짜 여길 오는게 아니었다. 아니 메뉴 선정을 현우에게 맡긴게 잘못이었을까? 역시 먼저 좋아하면 죄인이다. 물론 무드있는 뻑쩍지근한 파인 다이닝에 갈 수도 있었다. 현우는 뭘 먹어도 맛있어 할 거니까. 그렇지만 현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야 현우는 너그러워질거고, 이상한 말을 해도 가만히 끄덕거릴거고, 알겠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할거고...
"나 형 좋아하는데. 형 나 좋아해 안좋아해?"
"어? 나도 좋아하지 혁이. 마라탕에서 면좀 건져봐 불겠다."
현우가 마라탕 국물을 후르릅 들이켰다. 잠깐 사이에도 민혁은 후르륵 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하고 그런 무심함이 싫다가 또 다시는 그 무심함이 귀여워졌다. 민혁은 고개를 기울이고 현우와 눈을 맞췄다.
"나는 형이랑 사귀고 싶은데?"
"쓰읍...좀 맵네. 뭐라고?"
"사귈거야 말거야? 빨리말해. 나 좋다며."
"좋아하지~어어..."
스읍. 현우가 갸우뚱 하더니 말했다. 근데 너처럼은 아닌데. 너처럼은 아니라니?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는다더니 그럼 현우는 다 알고 있었던 걸까?
"뭐 지금처럼 지내면 안되냐?"
"그건 안돼."
민혁이 테이블에 좀더 바짝 붙어 앉았다. 현우가 티슈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어 그 꼭 사겨야돼?"
"어 그거 아니면 안돼."
"그래 그럼 뭐...그래라~"
"나 글로 가서 앉는다 그럼?"
민혁이 현우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어 와~"
현우가 벗어놓은 셔츠를 옆으로 치우고 자리를 내줬다. 민혁이 현우 곁에 답싹 앉았다. 야 손 조심해 덴다. 현우가 민혁을 단속했다.
"더 먹고싶은거 없어? 다 사줄께. 이 가게도 사줄 수 있어."
"뭐 가게? 가게를 왜 사."
"왜? 나 가게 살 수 있어."
"사장님 장사 잘 하고 계신데 니가 가게를 사면 안되지."
"형 생각보다 상식적이네?"
"날 뭘로 본거야?"
"먹을거면 다 오케인줄 알았지."
"어우..나 안그래."
현우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 술이 잘받는다. 민혁은 현우의 팔을 끌어안았다. 어 민혁아 나 젓가락질 못하는데. 그럼 바꿔앉아. 민혁이 현우의 왼쪽에 앉아 팔을 품에 안았다. 현우는 먹고, 마시고, 민혁에게 권했다가 거절당하고, 울컥한 현우가 야 너는 한번을 안먹냐? 했다가 민혁이 한번은 먹어주고 그랬다.
차를 놔두고 집까지 걸었다. 현우는 몸은 가누지만 걸음이 느렸다. 민혁은 그게 좋았다.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서 얼굴이 새빨간 현우가 민혁을 물끄러미 보았다. 헤헤 웃더니 민혁아 너는 진짜 아이돌같이 생겼다. 눈이랑 코랑. 그러고도 몇번은 더 얼굴 이야기를 했다.
민혁의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현우는 감기는 눈을 하고 서 있다가 민혁아 너는 진짜 예쁘게 생겼다. 했다.
"알아 나도."
"너 진짜 구구 닮았다."
현우가 민혁의 머리를 헝클었다.
"나 구구같아?"
"어."
"그럼 나도 구구처럼 형 얼굴 핥을래."
"마음대로 해~"
민혁은 소프트콘을 먹는것처럼 현우의 뺨을 핥았다. 현우는 그냥 웃었다.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었는데 그래도 웃었다. 껴안았더니 현우도 팔을 두르고 도닥여주었다. 이 머리 하길 잘했다. 상한게 속상해서 셀프염색 한거라 얼룩진건데. 헤어 선생님한테 바가지로 욕먹었지만 민혁은 지금 행복했다.
*
"형 야 숟가락을 안받냐?"
"몰라."
"몰라가 아니라 저 숟가락 없는데 숟가락 주세요 해야지."
"포크로도 먹을 수 있잖아."
"말을 말자."
이번에도 현우는 양손 가득 크로플을 사왔다. 타이밍 좋게 밥도 도착해서 촬영도 멈췄다. 민혁과 현우는 도시락을 들고 촬영장을 나왔다. 이번 도시락은 타코 라이스였다. 촬영장 근처 창고 쪽문 앞 계단에 둘이 붙어 앉았다. 현우는 후드득 흩어지는 밥알을 먹느라 계속 후웁 소리를 내고 민혁은 현우 도시락에 있는 파인애플을 이쑤시개로 찍어 먹었다. 현우가 포크로 도시락을 가리켰다.
"너네 스탭중에...진짜 맛을 아는 사람이 있어. 밥을 맨날 잘 시켜."
여기도 맛있다 야. 어딘지 물어봐야지. 밥풀을 묻히고 현우가 웅얼거렸다. 민혁이 밥풀을 날름 핥아먹었다.
"야 장난치지마."
"장난하는 거 같애 내가?"
"어우... 완전 진심 같은데? 나는 남자한테 못 그래."
"뭐만 하면 남자한테 남자한테 뭐 조선시대 사람이야?"
"아 그치. 꼰대같아?"
"꼰대가 아니고 촌스럽다고."
"아 그치."
"아 그치가 아니라고 진짜 열받게 할래?"
그런데 민혁의 표정은 딱히 열받은 표정은 아니다.
"나 오늘 얼만큼 예뻐?"
현우가 상체를 뒤로 물리고 민혁을 훑어봤다. 민혁은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귀엽게 깜빡거렸다.
"새삼스러운데 잘생기긴 잘생겼다."
"그렇지? 내가 제일 잘생겼지?"
현우가 음 하고 고민했다. 고민하지 마. 민혁이 주먹으로 현우의 어깨를 밀었다.
"응 그치? 너만한 애는 없지."
너 파인애플 더 안먹어? 남은거 나 먹어도 돼? 민혁이 대답하기 전에 이미 현우는 포크로 파인애플을 집어갔다. 괜히 즐겁다. 민혁은 양팔을 뒤로 짚고 다리를 아래로 뻗었다. 발끝에 걸린 슬리퍼를 달랑거렸다. 현우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혁아 촬영 언제 끝나냐?"
"이거 한... 세시? 왜?"
"구구 밥주러가게. 너 구구 본지 오래됐지?"
"헐... 완전 오래됐지."
그때가 여름이었잖아, 형. 근데 지금은 봄이잖아. 민혁이 현우에게 바짝 붙었다. 현우가 모자를 거꾸로 고쳐 썼다. 다 먹은 도시락을 덮고 밭밑에 있던 크로플 봉지를 주워들었다. 혁아 먹을래? 예의상 한번 권했다. 아니. 민혁은 늘 그러듯이 거절했다. 나 단거 안먹잖아. 아 그렇지? 현우는 머쓱해하며 바지에 손을 털었다. 크로플 상자를 열고 포크로 어디를 찔러먹을지 가늠해보다가 포기하고 크로플에 코를 파묻었다. 우움 하고 베어먹곤 맛있다아 감탄했다.
"혁아 구구 진짜 많이 컸다?"
민혁은 현우의 뺨에 묻은 아몬드를 털어냈다.
"컸다고? 그게 다 큰거 아니었어?"
"그때 아직 애기였어. 한살도 안됐을 때."
"대박... 근데 아직도 챙겨?"
"당연하지."
민혁아 원래 강아지는 한번 밥주면 계속 챙기는거야. 의리야 그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