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last and always


어떤 주말

익명A

 

마음만으로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다

 

 

 

 

 

박지윤 - 오후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가는 기분은 TV 채널을 스무 번쯤 돌린 후에 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와 비슷하다. 그 날의 약속이 결혼식 참석 하나뿐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결혼식장만큼 데자뷰를 경험하게 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비슷한 디자인의 식장,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전개. 식장으로 향하기 전에 축의금 봉투가 잘 들어있는지 가방에서 꺼내 확인한다. 이름은 맞게 쓰였는지, 입구는 잘 밀봉되어 있는지도. 시간이 갈수록 결혼식에 갈 때는 축하의 마음보다 이런 것이 먼저다. 그리고 장례식도 비슷한 패턴을 가지게 된다

 웨딩홀의 거울 벽 앞을 지날 때 옷매무새를 다시금 재차 확인했다.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건 아무것도 기억 못 할 신랑신부들이 아니라 식장에서 마주칠 하객들이다. 오늘 결혼식은 대학교 동아리 선배의 것이었다. 학과 동문회 같은 것은 일절 가본 적 없지만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만났던 동아리 사람들과는 그래도 꽤 오래, 이렇게 하나 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올 때까지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봐야 알람은 꺼놓았고 가끔 정말 할 일이 없을 때만 들어가 보는 단톡방이 전부일 뿐이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오고 간 메시지들을 보니 꽤 많이 올 것 같았다. 나는 중력의 방향으로 쳐지는 안면 근육들을 끌어올리고 식장으로 향했다. 좋은 날에 어울리는 밝은 얼굴로 축의금부터 내고, 식권은 주머니에 넣은 다음 한창 하객 맞이를 하고 있는 오늘의 신랑에게 다가갔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는 짧고 굵게 해야 한다.

 

 - 선배. 진짜! 결혼을! - 축하드려요.”

 . 바쁜데 어떻게 왔어. 고맙다.”

 

 오늘 멋있어 보인다. 축하한다. 진짜 부럽다. 등의 간지러운 표현은 감탄하는 표정과 탄성이면 해결된다. 간단하게 인사를 해치우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축의금도 냈고, 주인공한테 눈도장도 찍었으니 오늘 할 일의 80%는 끝났지만은 예식장에 문은 하나뿐이며, 방금 인사했는데 도로 나갈 수는 없어서 신랑이 문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식장 안에 머물기로 한다. 하객들은 대부분 선배의 직장 동료들인지 무리 지어 이야기 중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승주 선배 열심히 살았네. 하긴 학교에서도 과 대표니 뭐니 열심히 살던 사람이긴 했다. 아는 얼굴들이 있는지 둘러보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두드렸다.

 

 ? 이민혁.”

 

 돌아보니 동아리 사람인 건 알겠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이름을 부르는 거 보니 후배는 아니겠고. 선배인지 동기인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최대한 반갑게 웃었다. 다행히 상대가 먼저 말했다.

 

 어제는 못 올 것처럼 얘기하더니 왔네? 선배들 저기 있더라.”

 동기였구나. 애써 태연한 척 어깨 아래 팔뚝을 두드렸다.

 . 와야지. 총회도 계속 못 나갔는데.”

 

 녀석과 함께 자연스럽게 선배들 무리에 다가갔다. 돌아가며 간단히 안부를 묻고 근황을 얘기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언저리로 물러난다. 사람이 여럿일 땐 티 나게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해야 질문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어차피 이런 자리,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눈 이야기는 풍선껌처럼 얇게 넓어지다가 터지면 흔적도 없어지기 마련이니 이렇게 흘려버리면 된다.

 그렇게 잠시 후엔 기억도 안 날 이야기를 떠들다가, 식이 시작한다는 안내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을 때. 나도 동기들과 함께 중간에서 좀 뒤쪽에 앉았다. 하객이 많다지만 자리가 꽉 찰 정도는 아니어서 내 옆으로는 의자가 쭉 비어 있었다. 본식이 시작되고 몇 번이나 방청객스러운 박수를 쳤을 때쯤 비어있던 내 옆 자리에 누군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갈까 말까 하다가 늦게 마음먹은 누군가겠거니 싶어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내게 말을 걸려던 동기 녀석이 갑자기 깜짝 놀라는 얼굴을 했다. 녀석은 내 뒤를 보고 있었다.

 

 ? 현우 형?”

 . 안녕. 오랜만이다 명준아.”

 

 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말에 나는 갑자기 담이 결린 것처럼 고개를 돌리기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느꼈다. 간신히 체감 상 로봇 부럽지 않게 뻣뻣한 모양새로 목을 돌려보니 내 바로 옆에 손현우가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현우가 말했다.

 

 안녕 민혁아, 잘 지냈니?”

 

 2년 반, 햇수로 3년 만에 보는 것인데도 마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만난 것처럼 가볍고 일상적인 인사였다. 나 대신 내 입이 말했다.

 

 . 오랜만이네.”

 그치. 오랜만이지 우리.”

 

 옆의 동기들이 수업 시간에 몰래 떠드는 학생들처럼 손현우에게 어떻게 지냈느냐고,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었냐고 말을 걸었고. 손현우는 웃었다. 동기들이 말을 전했는지 앞줄에 앉아있던 선배들도 뒤를 돌아다보며 반가운 기색을 했다. 손현우는 또 웃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예식에 집중한 척을 했다. 우리 단톡방에 손현우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현우는 지금까지 이모티콘 하나조차 띄운 적이 없었다. 당연히 오늘 온다는 말도 없었다. 갑작스런 등장으로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보다 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손현우의 옆 자리는 굉장히 불편했다.

 지루한 주례사와 선의로 들어주는 축가가 지나고 식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끝나고 바로 없는 약속을 만들어내 튀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더 뭉그적댈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랑신부님 친구분들 나오세요.”

 

 어느새 예식이 끝나고. 사진사의 말에 우르르 움직이는 일행들에 섞여 얼떨결에 일어났다. 선배의 오랜 친구들이 맨 앞에, 우린 두 번째와 세 번째 줄에, 직장 동료들이 뒷줄에 우왕좌왕하며 선다. 나는 동기들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가 사진사가 콕 집어 앞으로 나오라는 바람에 한 칸 내려왔다. 그래서 하필 손현우의 옆에 서게 되었다. 셀카는 잘 찍는 편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오늘따라 유독 어떻게 해도 웃는 얼굴이 어색하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식당 어디냐?”

 피로연 한데?”

 

 다들 식권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중에 뒤쪽에서 손현우가 자신의 동기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잠깐 쳐다봤다고 생각했는데 손현우가 이쪽을 돌아보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식권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일행들과 같이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결정은 나 있었다.

 

 

 식당은 결혼식장이 다 그렇듯 가짓수는 많고 먹을 것은 적은 뷔페였다. 나는 일행들이 자리를 잡고 한 테이블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연스럽게 사람이 적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음식을 담아가지고 돌아왔을 때, 비어있던 내 맞은 편 자리에 손현우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작은 테이블엔 나와 내 동기, 손현우와 손현우의 동기인 선배 한 명. 이렇게 네 명이었다.

 

 현우 너는 어떻게 그 동안 코빼기도 안 보였었냐.”

 . , 어쩌다 보니 한 1년 지방 발령 나서 내려가 있어가지구.”

 어디?”

 포항.”

 . 그 멀리까지? 너 뭐 좌천 뭐 그런 건 아니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승진시켜서 다시 불러 올린 거 보면?”

 , 이거 자랑질 하는 거 봐. 연봉 좀 올랐다 이거냐?”

 세금 떼면 올라 봤자지 뭐.”

 

 나는 마요네즈 맛만 나는 샐러드를 씹으며 손현우와 선배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날 때려 치고 싶다던 그 회사를 그래도 잘 다니고 있었구나. 자주 가던 곳에서도 도통 한 번을 마주치질 않아 새삼스레 서울 참 넓구나 생각했는데, 아예 여길 떠나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알 리가 있나. 원래도 SNS 같은 데에 자기 일상 시시콜콜 보고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랬다 한들 전 애인의 SNS나 몰래 들여다보는 짓을 하느니 혀를 깨물 나였다.

 

 민혁이 너도 진짜 오랜만에 본다. 너도 어디 지방에 가 있었냐?”

 저는 밤낮이 바뀌어서 살아가지고요,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는데요 뭐.”

 그래가지고 연애는 어떻게 해. 장가는 가겠냐 늬들?”

 에이, 그러는 너는. 승주도 가는 데 너는 왜 아직이냐?”

 그러게. 내가 승주 저 자식보다 늦다니. 자존심이 쫌 상하네.”

 

 화제는 오늘의 신랑으로 넘어갔다. 마침 피로연 복장으로 갈아입은 신랑 신부가 등장해 테이블마다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다들 비슷한 덕담과 짓궂은 축하를 전했다. 그것도 잠시고 주인공들이 빠져나가자 사람들은 곧 제각각 식사나 만남 같은 자기 목적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같이 앉았던 동기와 선배가 배를 채우자마자 우리 학교 사람들이 모인 큰 테이블로 넘어가 버려 자리엔 어느 순간부터 우리 둘 뿐이었다. 두 번째 접시를 채워온 손현우가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가운데 있던 맥주를 한 병 땄다.

 

 한 모금 할래?”

 나 차 가져와서 안돼. 형은 술 마시게?”

 여기 있는 거 다 먹을 건데? 본전 찾아야지.”

 축의금 꽤 쓰셨나 보네.”

 어차피 우린 축의금 회수도 못 할 텐데. 먹어서라도 채워야지.”

 

 맥주잔을 입가에 대고 하는 말에 나는 사래가 걸릴 뻔 했다. 결혼 못 할 거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이기도 하고, 그 주어가 우리인 것도 의외였다. 나는 언젠가 손현우의 결혼 소식이 들려와도 절대 배신감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손현우는 그럴 수 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손현우를 포기했으니까. 한 번에 잔 속의 맥주가 반 이상 사라지고, 접시로 눈을 돌리며 손현우가 물었다.

 

 잘 지냈어?”

 아까 들었잖아.”

 일 말고. 그냥 두루두루.”

 두루두루 별일 없네요.”

 어머님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나보다 훨씬 건강하시답니다.”

 …….”

 …….”

 ……이거 맛없다.”

 뷔페 갈비가 다 그렇지 뭐.”

 

 나는 샐러드 소스가 흘러들어 눅눅해진 새우튀김을 씹으면서 대꾸했다. 우리의 대화는 이것저것 뒤섞인 음식 접시와 모양새가 비슷해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던, 게다가 오랜만에 보아서 더 낯선 정장 차림의 손현우를 바라보았다. 격식 있는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본전 찾겠다더니 진짜 아침도 굶고 왔나 싶게 양 볼 가득 음식을 넣고는 접시를 파헤치고 있다. 원래도 잘 먹는 사람이긴 했지만은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싶은 순간, 나는 얼추 빈 접시를 밀어놓고 테이블에서 일어나 뷔페를 돌며 천천히 신중하게 음식을 골라서 돌아왔다. 앉으면서 보니 역시나 손현우의 접시는 내가 일어서기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맥주만 더 비어있었다. 내가 앉으니 놓았던 포크를 얼른 다시 드는 손현우에게 말했다.

 

 천천히 먹어. 본전 찾기 전에 체하겠네.”

 괜찮아.”

 

 저 놈의 괜찮다는 손현우의 말버릇은 아직도 여전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앉고 인사를 건네길래 진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더니 내 앞에서 먹는 데 열중한 하고 있었던 것에 치사스럽게도 마음이 좀 풀어진다. 예전에도 그랬다. 긴장하면 뭔가가 오버되는 거. 너무 한 곳에 신경이 몰리면 과부하가 걸린다고, 분산 시키느라 일부러 그런다고 했었던가. 나한테 그렇게 설명했던 걸 기억은 하려나. 나도 초밥에 집중한 척 하며 물었다.

 

 승주 선배랑 친했어? 오늘 올 줄 몰랐는데.”

 얼마 전에 승주 다니는 회사랑 거래가 있었는데 담당자가 승주였어. 도움 많이 받았거든.”

 , 어쩐지.”

 

 손현우의 충분히 납득 가능한 대답에 어쩐지 실망하는 내가 당황스러워 허둥대다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는 콜라를 따서 들이부었다. 목구멍이 따끔따끔하다. 다행히 손현우는 뻣뻣한 스파게티를 포크에 감느라 고군분투 중이어서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신히 조금 숨을 돌리고 물었다.

 

 포항은 어땠어?”

 사람 사는 데 다 비슷하지.”

 그래도.”

 사실 잘 몰라. 계속 회사 기숙사에 있어가지구. 돌아다녀 본 데도 별로 없고. 그냥 계속 회사 헬스장 기숙사 반복만 해서.”

 뭐 그렇게 재미없게 살았데.”

 그러게 말이다.”

 

 회사와 헬스장 집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루틴의 일상. 주말은 모자란 잠. 그리고 맥주 한 캔과 TV에서 해주는 영화가 채우는 드물게 잠 못 드는 밤. 최근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이상하게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이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던 찌질한 마음이 나한테도 있었나 보다. 문득 나와 눈을 맞추고 손현우가 말했다.

 

 그래도, 핑계 김에 독립은 했지.”

 …….”

 우리 부모님 절대 허락 안 해주실 것 같더니.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더라고.”

 

 이번엔 정말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다. 그 무렵의 이야기였다. 손현우의 취업을 핑계로 우린 같이 살고 싶어 했지만, 손현우가 가족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난 그것에 실망했다기보다 가족들에게 끝까지 나를 그냥 룸메이트 할 동생으로만 설명하려고 하는 손현우의 태도에 실망했고, 손현우는 가족에게라도 커밍아웃하고 인정받길 바라는 나를 힘들어했다. 형의 대학 졸업 직전 간신히 시작했던 우리의 6년간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게 그동안 손현우와 내가 학교 모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였다.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연결고리였으니까.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 손현우 때문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올라왔으니 집으로 다시 들어가?”

 아니. 안 들어갈려고. 사실 못 들어가는 게 맞지.”

 

 나를 물끄러미 보던 손현우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뭔가 뒷말이 더 남은 것 같다는 조바심이 일 때쯤 손현우가 말했다.

 

 포항 내려가면서 집에 얘기 했거든. 나 남자 좋아한다고. 들어오라고 안 하시더라.”

 

 입이 바싹 말랐다. 대충 삼킨 음식이 짠지 쓴지도 모르겠다. 손현우의 말에 머릿속에서 아직 읽어선 안 되는 뒷 페이지까지 훌쩍 넘어가는 것 같았다. 간신히 붙잡고 말했다.

 

 ……집에 얘기했다고?”

 .”

 그렇게 해달랄 때는 안 해주더니?”

 오히려 잃을 게 없으니까 용기가 나더라고. 뭐 뜯어 말려서 못 만나게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현우는 내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 첫 번째 남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첫 경험도 아니었지만 내게 첫사랑이라는 말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숙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막연하게 어른의 연애라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손현우를 만났다. 그리고 손현우에게는 어느 때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지만, 헤어진 뒤에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날 사람이 있다면 손현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사람이 3년 만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평범하고 지루한 주말, 남의 결혼식장에서.

 

 오늘 진짜 왜 왔어?”

 너 올 거 같아서.”

 

 대답이 너무 빠르다. 진심인지 준비한 멘트인지 모르겠다. 나는 급하게 지쳐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늘어졌다. 식욕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날 두고 손현우는 디저트를 챙겨서 돌아왔다. 딱딱한 파인애플을 공들여 씹고 있는 손현우를 멍하니 보다가 손을 뻗어 손현우의 접시에 놓인 케이크 조각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혀뿌리까지 달다. 당이 떨어졌었나. 덕분에 조금 정신이 들었다. 내가 김칫국 마시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남의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나가서 얘기해.”

 . 근데 나 7시에 기차 타야 돼.”

 무슨 기차?”

 포항 가야지. 나 아직 집 아직 못 구해서 짐 다 포항에 있거든.”

 미치겠다. 오늘 포항에서 왔다고? 그것도 나 하나 보자고?”

 그렇다니까. 내가 민혁이 너 아님 포항에서 이 멀리까지 굳이 왜 왔겠냐. 그냥 축의금이나 쏘고 치웠지.”

 

 태연하게 말하는 손현우의 얼굴을 보다가 이마를 짚었다. 중요한 말을 다 해치우고 나니 얼굴에서 아까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긴장이 사라져 버린 게 어쩐지 괘씸하다. 우연히 재회하길 바라며 왔다고 고백해오는 전 애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려운 것은 이제 내 몫이 되어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손현우도 뒤따라 일어났다. 인사도 없이 둘만 사라졌다고 나중에 한 소리 들을 것 같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번 주말은 어쩐지 짧을 것 같다.